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나에 대한 객관화, 혹은 쑥스런 고백

지하련 2009. 4. 13. 12:22


최근에서야 비로소 내가 여성에게 썩 매력적이지 못한 남자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나란 남자는 외형적으로는 이런 사람이다.

오래된 포크락이나, 재즈와 클래식을 즐겨들으며, 주말에는 갤러리나 미술관을 다니고, 와인을 즐겨마시며, 드립커피를 집에서, 사무실에서 만들어 마신다. 한 달에 책 5권 이상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이래저래 관여하고 있는 사업만 3 - 4개.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도 일하는 사람. 심지어 책 읽는 것도 일이고 갤러리나 미술관 가는 것도 일인 사람.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가 하면, 동시에 서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 읽기도 좋아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 부드럽고 매력적이게 보이지만,
실상은 아래와 같다.

대화를 하다가, 한 가지 소재가 나오면, 나는 그것에 대해 전문가적 언어를 사용하여, 이야기한다. 문제는 문학에 대해서도, 미술에 대해서도, 음악에 대해서도, 아니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다. 말투도 말투지만, 종종 스스로도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잡다한 지식으로 완전 무장된 상태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종종 유머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이는 여름날 소나기와도 같아서 타인에게 지속적인 감동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매우 까다로운 점도 있어서,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화를 낸다. 그냥 화를 내는 것이지만, 화를 내면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마치 신문에 실린 전문가의 칼럼을 읽는 식이라, 처음 만나는 이에겐 다소 황당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실은 최근 들어 이러한 내 모습이 연애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 하루 밤 연애 상대로는 나쁘지 않은 상대일 지 모르겠지만, 장기간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많은 장애가 있다는 점을 내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내 사소한 로망,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위해 주말 오전 식사를 준비한다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하는 따위는 너무 먼 꿈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긴 많은 것들을 고치는 중이다. 그 중에서 아래 두 가지.


1. 말을 많이 하지 말자.
2.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로 하자.

하지만 종종 이 결심도 수포로 돌아가곤 한다. 최근 들어선 내 스스로 내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 모습을 이제서야 객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말도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노력을 할 생각이다. 그동안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변화 진행형인 셈이다.

롤링 스톤즈의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편하게 맥주 마실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서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참 어려운 종류의 일이다. 특히 나같은 사람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