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중독

지하련 2009. 4. 24. 12:31


요즘 부쩍, 자주, 곧잘, 심심치 않게, 흔하게, 우울해지곤 한다. 집 청소를 하지 못한지, 2주일 째. 냄비에 담긴 음식물은 미동도 없이 2주일 째 그대로 방치되었고, 금붕어들이 노는 어항의 물도 2주일 째, 그대로다. 일요일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요금 미납으로 끊겼고 그 누구의 편지도 오지 않는 우편함에는 딱딱한 표정을 가진 고지서들만 쌓여가고 있다. 몇 주 전 사놓은 미국산 피노누아 와인은 어두운 찬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무너져가고 있을 지.

다시 젊은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오래된 친구들 얼굴 깊은 곳에서 나이를 느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참 이뻤던 친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할 때면,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직도 종종 말이 통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 끼인 우리들이 힘없고 불쌍해보인다. 

이럴 때, 술은 참 좋은 벗이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자, 멈춤이 없다. 



즐거운 음악과 청량감을 주는 술은 있지만, 나에게 기운을 줄 친구는 없다. 여자 후배들은 무섭고, 술 기운에 나를 제어하지 못한 채, 손이라도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두렵고, 오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슬프고 종종 기운 빠지는 막다른 골목을 향해 있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궁리해보지만, 딱히 갈 만한 곳도, 가서 할 만한 생각이나 행위도 없다. 그저 지쳐가고 있을 뿐. 




이만큼 나이 들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쓸쓸하다고 투정만 부리는 내 마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