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현실 정치, 장자연, 그리고 나

지하련 2009. 5. 2. 20:40


요즘 한국을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낯설고 힘들까 곰곰히 따져보았더니, 92학번인 나는 사회생활을 IMF 때 시작해 DJ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에도 현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론적인 수준이었고 현실 정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 생활을 해보니, 견고하고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를 새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대학 시절, 데모 하지 않는다고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공격하던 이들 대부분은 지금 너무 평범하게 변해버려, 너무 낯설고 도리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라는 건 아니다. 나는 확실히 리버럴(자유주의)에 가깝다. 즉, 우파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자신이 우파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들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중세주의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였다. 늦은 퇴근길 택시를 타고 가면서, 택시 기사 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한참을 노무현이 아니라 다른 어떤 누구가 오더라도 극적인 경제 회복은 어렵다고 했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때서야 그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은 그 때뿐이였을 것이다. 택시 기사 아저씨와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건 현실 정치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실제로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90년대 초반까지의 높은 경제성장율에 대한 환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직도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건 그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런 높은 성장율을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것같다. 다시 말해서 높은 경제성장율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와 비슷하게 이제 한국 기업들의 경쟁 상대가 중남미나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북미 유럽의 기업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 한국이 5%를 넘어가는 경제 성장율을 이룬다는 건 미친 짓이거나 기적에 가깝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같은 높은 실업율을 앞으로 계속 지속될 것이고 미국과 같은 빈부격차를 향해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시간당 노동 생산성 경쟁과 높은 품질 경쟁력, 창의적인 상품 개발이 우선시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노무현 정부과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의 기업들은 선전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해대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10년 전의 영화롭던 시절만 기억하고 지난 10년 동안의 안 좋은 일들만 떠올리며(어찌하여 좋은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10년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가올 10년에 어떤 일들이 생기고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이슈이고 위기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언론을 잡기 시작했다.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린 여배우의 자살은 이미 잊혀져 가고 있다. 여자 연애인의 성상납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들 알면서 모르는 척 할 뿐이다. 한 여배우가 자살했고 그 사실은 잊혀질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인간의 모든 것들은 교환가치를 지닌 '상품'이다. 머리카락 끄트머리부터 사소한 영혼의 끝자락까지. 몇 시간 동안 아름다운 몸을 주면서, 원하는 어떤 것과 교환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이는 교과서적인 발언이 아니다. 한 번 교환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어떤 꿈이나 소망들은 교환가치로만 환산되기는 너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아름다운 육체도 마찬가지다. 하나 하나 자신이 가진 어떤 것들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결국 세상에 대한 저주와 절망, 분노, 슬픔과 자신의 생을 교환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어린 여배우의 자살은 그냥 묻혀지는 것일까.

극적으로 대비되어 비쳐지는 것이 박연차 게이트다. 결국 전직 대통령을 서울까지 불러들인 검찰이라는 조직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나하나 낱낱이 언론에 공개되는 이 사건은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참 열을 올리며 정치 이야기를 했더니, 나이 드신 분이, '말 조심해라'고 하셨다. 그랬다. 나이 든 이들의 눈에는 DJ와 노무현 정부 시대만 거친 내가 느끼는 이 낯설고 당황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그들은 현재의 이 나라가, 자신이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복고적 정치 트렌드로 가득 차, 아늑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러>>에서, '오즈의 마법사'는 경제 공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고 그 동화에 등장하는 백수의 왕 사자는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은유라고 적고 있다. 실제 그런 것같다. 그리고 결국 국민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들이 불쌍했다. 내가 불쌍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비관주의만 늘어나고 있다. 세상은 진실이라곤 하나도 없는, 오직 거짓말과 비밀로만 쌓여진 숲과 같이 느껴진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패배하게 되는 나 자신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은 결국 내 곁을 떠났고 절친했던 이들은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나를 욕했다. 떠나가는 이에게 자신만만하게 돌아오라고 하지 못했고 나를 욕하는 이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을 흘렸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내일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수 년 전, 그녀와 결혼했더라면, 현재의 내가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회한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이후 번번히 실패하는 내 연애담은 아마 싸구려 시나리오도 되지 못하고 영화사 사무실 쓰레기통으로 바로 꽂히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내 마음은 이 나라의 현실과는 이율배반적으로 뜨겁고 순수하다고 믿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