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허난설헌, 김성남(지음)

지하련 2009. 6. 28. 13:58
허난설헌 - 6점
김성남 지음/동문선




많은 기대를 하고 펼친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완성도는 너무 떨어졌다. 여기저기 쓴 논문들을 수정없이 모은 듯 보이는 이 책은 똑같은 내용이 책에 앞에 등장하기도 하고 뒤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엔 책의 내용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처음에는 규방시인이 아니었다고 하다가, 뒤에는 규방시인 허난설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난설헌의 천재성이나 독창성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 허균의 누이면서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이면서, 유선시(遊仙詩)의 대가였다. 그녀는 시간와 공간을 잘못 타고 태어났으며, 그래서 그녀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신선의 세계를 그리워했다.
박복한 운명의 주인공이었으며, 서른이 되기 전에 생을 마친 비운의 여인이었다.

오동나무 한 그루가 역양에서 자라나,
차가운 음지에서 몇 년을 견디었던가.
다행히 귀한 장인을 만나,
베어져 거문고로 만들어졌다오.
거문고로 만들어져 한 곡조를 타보았지만,
세상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광릉산의 노래가,
끝내 전해지지 못하였는가 보오.
(34쪽)


조선시대 내내 허난설헌의 시에 대한 평가도 낮아서 표절이라는 의견이 팽배했으며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도리어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중국에서 나온 허난설헌 시집이 조선으로 들어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현재에 이르러 재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난초를 보며>
그득히 피어난 창가의 난초,
가지의 잎 그리도 향기롭더니.
가을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니,
슬프게도 가을서리에 다 시들었구나.
뛰어난 그 모습 생기를 잃어버려도,
맑은 그 향기는 결코 죽지 않으니.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운다.
(88쪽)



이 책을 권할 생각은 없으나, 안타깝게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다른 책을 읽어본 바 없으니, 다른 책을 추천할 수도 없다. 허난설헌 시집이 몇 권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상태가 어떤지 모른다. 하지만 허난설헌은 기억해두어야 할 조선 시대의 시인이며, 앞으로도 계속 읽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