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금요일의 출근

지하련 2009. 6. 19. 11:28


김포공항 옆에서 2호선 선릉역까지 오는 건, 꽤 고역이다. 지하철 안에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13쪽)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캄캄한 공포가 있다. - 조셉 콘라드
(3쪽)  


그 사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균의 누이였으며,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꽤 힘들게 완독했으며, '창의와 혁신의 핵심전략'이라는 경영 서적도 한 권 읽었다. '햄릿'을 다시 읽었고,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다시 읽었다. 

전시는 더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어젠 서울옥션에서 114회 미술품 경매가 있다는 레터를 받았다. 그 레터 안엔 청천 이상범의 산수화 엽서 몇 장이 있었다. 건조한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생뚱맞은 표현으로 엽서를 쳐다보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금붕어 모이를 주면서, 잠시 웃었을 뿐... 

요즘 내 모습은 마치, 억지로 바쁘게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서글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일 뿐.
 




일요일 아침이면, 내 방은 이렇게 변한다. 턴테이블엔 오래된 LP를 올리고, 휴일에 듣고 읽을 시디와 책, 잡지를 방 옆에 쌓아둔다.

내 일상이 위선적으로 보이는 건, 정말로 위선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위선적이어서 그런 걸까.

마치 살아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금요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