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지쳐가는 오후, 몇 장의 사진

지하련 2009. 7. 4. 16:16


일어나자마자 목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몇 주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목감기까지 걸려버리는 바람에, 몸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이런 육체적 고통이 혼자 사는 이에게 주는 비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없었다면, 아마 자포자기 상태로 급격하게 무너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의원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환자를 대한 여자 한의사는 나에게 한 8주 정도 다니면서 한약도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지만, 바로 결정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삼성동 사무실에 왔다. 토요일 88도로는 꽉 막힐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버스는 시원스럽게 달렸다. 사무실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잠시 사진 정리를 했다.

작년 파리 출장에서의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대학 졸업하고 난 뒤 몇 번 프랑스 유학을 고민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하는 여러 일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랑팔레 앞 다리. 멀리 에펠탑이 보이고. 이 때 피악이 열리고 있었다.

눈이 즐거워지는 아트페어가 있다.  몇 시간 동안 전시장을 돌아다녀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한 작품, 한 작품 매력으로 넘쳐나서 즐거운 아트페어가 있는데, 작년 피악이 그랬다.

Alex Katz, Tiffany, 2003, oil on canvas, 244 x 85 cm


알렉스 케츠의 초상화는 꽤나 쓸쓸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현대인의 쓸쓸함을 그려낸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자신을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누군가가 호의로 내민 손을 절대로 잡지 않는 현대인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David Hockney, Woldgate Lane to Burton Agnes, 2007, oil on canvas, 2 parts, each: 122 x 91.5 cm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는 충격스러웠다. 마치 이쁜 표지를 가진 동화책, 그러나 내용은 어둡고 기괴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향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온통 초록색이었지만, 매우 낯설었다. 처음 보았을 때, 도대체 이런 풍경화를 그린 화가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역시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때 내 꿈도 그림 그리는 것이었는데, 어느 글쓰기로 바뀌더니, 이젠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확실히 지쳐버릴 것같은 느낌의 토요일 오후다. 남은 하루, 즐거운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것입니다.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작품을 소개하기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