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침묵

지하련 2009. 8. 19. 16:59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중심을 바꿀 것이며 세계는 그 자체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결, 소란, 빠른 움직임, 압박들이 이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의 차디차고 불타는 흐름이 멈추게 될 때,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던 저 숨은 목소리가 말하기를 그치게 될 때, 흉물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때, 세계는 간단하게 이 상처를 되아무릴 것이며, 부드럽고 한가한 세상의 층을 넓혀갈 것이다. 더이상 과거의 잠재적 나를 초월하여 가기 위한 무슨 상처자국도 추억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여행하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현실의 천을 찢는 일을 그만둘 것이며 내 의식의 충동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새울음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이 문득 잊혀져 버릴 것이다. 촘촘하고 검은 상보는 툭 떨어져버릴 것이고, 나는 그게 떨어지는 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이기도록 생겨먹지 않았다. 나는 지탱하기에 너무나 센 전류를 받아서 버쩍 달아오른 줄, 사물의 모서리를 비치고자 하다가 스스로 타버리는 가는 줄에 지나지 않는다."
- 르 끌레지오, <<침묵>> 중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침묵은 죽음 이후에만 허용되는 어떤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저주 받은 채로 낙인찍혀 태어난 우리들은 한 시라도 누군가의 저주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끔 생겨 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누군가의 증오 어린 시선을 피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선량하게 보이는 내 웃음을 내 저주받은 생을 숨기고 위한 위장막이며, 내 부드러운 눈빛은 누군가의 증오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거대한 도시의 탁한 공기로 오염된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끈적이는 땀이 지쳐가는 육체를 지나, 버림받은 마음마저 적시고 있는 8월 오후 ... 어수선한 나라, 어긋나는 대화들, 서로의 이익을 따지기 시작하는 세계 앞에서 어쩌지 못하며, 고작 허용된 건 침묵 뿐이라고 위안할 때, 그것마저도 불가능함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주말엔 르 클레지오의 '침묵'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아니면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복사해와야 겠다.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