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조중걸

지하련 2009. 10. 5. 12:30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 10점
조중걸 지음/베아르피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조중걸(지음), 베아르피, 2009.


'마술과 의미를 동시에 잃어'버린 세계, 사막이 되어버린 세계. '우리는 거울만을 보도록 운명 지어져 있고, 우리의 운명은 사슬을 벗어날' 수 없다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오랜 역사는 현대의 비트겐슈타인에서 머물러 있고, 그는 거짓된 말보다 진실된 침묵을 택한다. 이 얼마나 아찔한 귀결인가. 

책은 짧고 문장은 단순하다. '철학은 관념적 독단과 유물론적 회의주의를 양 끝으로는 하는 스펙트럼'이고, 우리 '인간은 관념론자가 되거나 유물론자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품지 않는다. 아니 이는 배운 사람들(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관념론자인지, 유물론자인지 잘 알지 못한다. 실은 관심이 없는 것이다. 대학 시절 교양 필수 과목으로 듣는 '철학의 이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플라톤의 '이데아'. 하지만 이를 가르치는 교수도, 이를 듣는 학생도, 현대적 삶 속에서 '이데아'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자신의 인생에 있어 과연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삶의 문제에서 시작된 철학은 삶과 무관한 언어의 나열로 배열되기 시작했으며, 삶과 닿지 못하는 어떤 체계로 이해되고 있었다.


어떤 시대의 철학은 동시대의 세계관의 형이상학적 표현일 뿐이다. 하나의 철학은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철학은 그러므로 우리 삶 위에 착륙한다. 우리 삶의 해명자로서의 철학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9쪽)


하지만 그 누가 우리 삶을 해명하기 위해 철학을 이야기하는가.

의심 많은 현대인들은 '믿지 못해'라는 단어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믿을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하든, '역시 믿을 건 돈 밖에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사랑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길 요구하는 현대의 연인들이 왜 태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고대와 중세의 철학이 '세계의 총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근세와 현대철학이 다분히 '우리의 인식 능력과 그 한계에 대한 탐구'로 변화하게 된 계기가 12세기의 일군의 철학자였듯이,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가지는 의심병은 실은 데이비드 흄을 위시한 영국 경험론 철학자들과 그 후예들과 동일한 지평에 있음에 관심 기울이는 이는 몇 명쯤 될까.

아프가니스탄이나 이슬람의 여러 나라로 자신들의 신도를 보내는 교회 목사들에게 윌리엄 오캄과 조지 버클리를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보편개념을 부정하고 오직 감각인식으로만 들어는 개별자만 긍정함으로, 신을 인간의 세계와 떨어뜨리면서, 신을 구원하고 자신들도 구원받길 원하는 이들의 태도를 그 목사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동시에 들뢰즈와 지젝에 흥분하는 이들 앞에서 이데아를 향해 서 있는 플라톤이 후세 (철)학자들에게 끝없는 영감과 반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흄의 철학 앞에서 우리의 세계는 그 어떤 확실하고 명증한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얼마나 큰 절망을 가지고 오는지,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이 그 철학 앞에 서서 우리 세계의 통합을 시도할 때의 모습이 얼마나 눈물 겨운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파산과 통합, 그리도 곧 이은 해체은 마치 패턴처럼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작고 사소한 삶을 이룬다. 감각적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 보편개념에 대해선 침묵하고, 말해질 수 있는 것(What can be said)과 보여져야만 되는 것(What must be shown)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말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관념적 독단인 '플라톤'에서 시작해 비트겐슈타인에서 끝나는 이 책의 여정은 우리에게 끝없는 절망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세계를 다시 한 번 통합을 시도했을 때, 그 시도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비트겐슈타인을 이야기하기 위해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아찔한 현대이지만, 그것이 철학 역사상 가장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곧게 서 있기 위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세계는 그대로 있고 우리는 서 있기 위해 세계를 요청하는 것이다. 세계는 예술을 닮고 언어를 닮는다.

책은 짧고 문장은 단순하지만, 이 책과 함께하는 여러 번의 반복된 독서는, 아찔하지만 그런 대로 견딜만한 현대적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줄 것이다. 교만하지 않으면서 (조금 고통스러울 지 몰라도) 진실한 어떤 삶의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그것조차도 원하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