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

지하련 2009. 11. 8. 14:34


Without books,
history is silent,
literature dumb,
science crippled,
thought and speculation
at a standstill.
Without books,
the development of civilization
would have been impossible.
They are engines of change,
windows on the world,
"lighthouses"
(as a poet said)
"erected in the sea of time".
They are companions,
teachers, magicians,
bankers of the treasures
of the mind.
Books are humanity in print.

-- Barbara Tuchman


책이 없이는
역사는 침묵하고
문학은 말을 잃고
과학은 절뚝거리고
사상과 사색은 정체된다.
책이 없이는
문명의 발달도 없었다.
책은 변화의 동력이며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며
(어느 시인이 말했듯)
"시간이라는 바다에 세워진
등대다."
책은 동반자고,
스승이고, 마술사며,
마음의 보고를 관리하는
은행가다.
인류를 인쇄한 것, 그게 책이다.

-- 바바라 터크먼
(1912-89, 미국 역사가 겸 저술가)
(출처: http://engweg.tistory.com/189)


CD가 나왔을 때, CD예찬론자들은 LP가 금방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몇 천장, 몇 만 장의 LP를 가지고 있던 음악 애호가들은 LP를 버리고 CD로 전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십년 남짓 지나간 요즘, 영원하다던 CD 대신 LP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구나 이십년전에 나온 CD들 중 몇 장은 에러가 나서 듣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이 영원하다고? 웃긴 소리다. 종이에 쓴 연애 편지은 백 년 넘게 보관할 수 있지만, 문서 파일로 쓴 연애 편지는 플로피 디스크든, 시디든, 하드 디스크든 백 년 가까이 보관할 수 있을까? 특정 문서 양식을 읽지 못하거나 바이러스나 물리적 한계로 인해 백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선 별도의 장비와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종이 편지에게 위험한 것은 우리 몸에도 위험한 것들이다. 깊은 호수나 끝없는 불길, 또는 마음의 화재 같은 것.

움베르토 에코에게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서 누군가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포켓북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 위에서 읽을 수 있으며, 연인와 긴 정사 뒤 침대 옆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도 읽을 수 있으며, 필요할 땐 연필로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할 수 있다며,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답했다.

아마 그 글을 읽은 한국의 경박스럽고 터무니없는 디지털 예찬론자들은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고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보고 마는 철부지 학생들은 에코가 드디어 특유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고 여겼을 것이다. 

9월 르몽드 디플로마크에서, 프랑스 출판인인 세드릭 비아지니와 기욤 카르니노는 '물신주의에 맞서는 최후공간,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라는 칼럼을 썼다. 그들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책들의 암울한 미래를 향해, 경고장을 날린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한 독서는 더욱 분할되고, 조각나며, 분절된다. 디지털,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멀티미디어는 미국 심리학자들이 종이매체의 선형적인 독서에 반드시 요구되는 '깊은 주의력'에 대립된 개념으로 파악한 이른바 '하이퍼어텐션'(hyper-attention)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최근의 황당한 사건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를 (성)폭행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하이퍼어텐션'을 떠올렸다. 결국 급격하게 변화된 미디어환경이 사람들에게 느리고 게으르고 무식하게 인내하는 법을 잊게 만든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세드릭 비아지니, 기욤 카르니노와 같은 필자가 한국에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그들의 칼럼 마지막 문단을 옮긴다.

종이책은 선형성과 유한성, 물질성과 현존성의 차원에서 속도의 숭배와 비판력의 상실을 저지하는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종이책은 닻을 내리는 지점이자 일관되고 분명한 사상을 예약하는 공간이다. 막대한 네트워크와 정보 홍수의 유혹에도 아랑곳 않고, 책은 저항의식이 숨쉬는 최후의 장소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 9월호



* 하이퍼 어텐션hyper-attention: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인지태도.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짧고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특성. 멀티미디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