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열정의 레토릭, 미셸 메이에르

지하련 2009. 11. 22. 18:56

열정의 레토릭 - 8점
미셜 메이에르 지음, 전성기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지금에서야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보다 자연스럽게 읽히고 들리게 되었지만, 실은 채 이 백년도 되지 않았다. 마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태도가 17~8세기에서야 비로서 등장했던 것처럼. 하나의 개념, 혹은 개념어에 대한 우리 삶의, 정신의 태도가 변화하고 혹은 새로 생기는 것도 역사의 일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 현대의 우리가 가지는 느낌도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일시적인 산물이며, 먼 미래에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를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 책은 ‘열정’에 대한 현대의 일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로마시대의 키케로는 열정을 정신이 흐트러진 경우들로 이해했으며, 기독교인들에서는 열정을 죄와 악의 현현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열정을 따른다는 것은 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며, 추악한 인간 본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종의 타락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는 patir(괴로움을 겪다)에서 나온 것도.

미셸 메이에르의 이 짧은 책은 열정에 대한 변호로 이루어져 있다. 열정에 대해 중세 사람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가지는 편견에 대항하면서, 열정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것임을, 우리 자신의 존재 근거임을 드러낸다. 그는 ‘열정들은 인간들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열정은 타자에 대한 답, 타자가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에 대한 답이며, 나에 대한 그 이미에 대해 내가 갖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며, ‘열정들은 하나의 구성된 자유에 답하려는, 즉, 그 자유를 누리려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표상’한다고 적는다. 즉 차이를 드러내며,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적, 정치적 삶에 있어서 열정은 가치 있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 셈이다.






[덧붙임]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열정들의 짧은 역사
- 열정들의 심리-열정들에 논리가 있는가?
- 정치에 대한 열정, 정치에서의 열정
- 스펙터클 열정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씌여진 책이라기 보다는 다소 소박한 의도 - 열정에 대한 현대적 변호 - 에 충실한 책이다. 깊이 있는 학문적 성찰이 전개되기 보다는 일반 독자들이 열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편견을 중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큰 책이며, 따라서 책은 매우 얇고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