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소레카라, 그 후엔, And Then~

지하련 2009. 12. 7. 00:07

"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나쓰메 소세키, '그후', 민음사, 286쪽



일요일 심야의 퇴근길 지하철 9호선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다 읽었다. 왜. 저를. 버렸지.요.?... 소설은 아무런 사건 없이 이어지다가, 마치 거친 골짜기를 며칠 째 헤매다가 무지개 낀 폭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을 읽는 이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그건 슬픈 비극일 뿐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9세기말의 시선으로 현대인의 비극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랑을 늦게 깨닫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데 다이스케는 어리석었다.

며칠 전에 만난 그녀는 '그 후'를 '소레카라'로 읽는다는 걸 알려주었다. 프랑스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동경으로 갔지만, 일본은 그녀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 늘 그녀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국이 그녀의 나라라고 하기에 그녀는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하고 일본 문화가 한국 문화보다 더 익숙했다. 몇 년간의 일본 생활이 끝나면 다시 파리로 돌아가겠지만.

뉴욕에 사는 친구에게 언제 한국 들어오느냐고 메일 보내고, 오래 전에 읽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뒤적였지만, 역시 서평 쓸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 천연덕스러운 보수주의자의 글은 요즘 읽기엔 너무 구식스럽다. 하지만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엔 일찍 광주에 내려가야 한다. 협상과 계약이 기다리는 미팅이 있기에.

광주의 지인들에게 연락해 볼까 하다가, 술 한 잔 걸쳐야 하는 부담 탓에 연락을 하지 못했다. 광주의 날씨가 어떤가에 따라 연락 여부가 결정될 듯 싶다.

집에 들어와, 마크 알몬드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사랑을 잃어버리게 될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얼굴이 떠올라 슬펐다. 사랑하고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두렵다. 이젠 그 두려운 마음을 들킬까 더 조심스러워졌다. 내 두려운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마크 알몬드 밴드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