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호모 파베르

지하련 1998. 8. 8. 21:11

"기다란 블론드 머리를 한 아가씨를 내가 처음 본 것은 배가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우리는 식당 테이블 좌석을 정하기 위해서 식당에
모여야 했다."
  - 막스 프리쉬, 『호모 파베르』 중의 한 문장.
    
     아버지와 딸의 첫 만남. 폴커 쉘렌도르프의 영화 『Voyager』(국내
   번역 제목: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원작 소설. Stanley Myers의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지축을 울리며 추락하는 비 속의 감상에 빠지고 말았
   다(* 참고로, 이 영화 속의 쥴리 델피는 정말로 이뻤다).
    
                 *             *
    
     또다시 비가 내린다. 저 비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혹시 사랑하는 이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혹은 그녀)를 찾기 위해서.
    
                   *            *
 
     
                     몸 밖의 그대 1
    
    
                                   채호기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을 조금
   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
   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었다고 하
   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