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지하련 2010. 1. 30. 08:30


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이다.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거의 매시간 듣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극명한 지적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젊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


외부-내부가 동일한 원칙와 질서로 움직이는 것. 새로운 방향의 운동이지만, 그 운동의 귀결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이 세상이 정해진 규칙(수학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문학과 예술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자신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발현되는 것. 그것이 고전주의다.
 
젊은 날의 루카치는 이상적인 고전주의를 꿈꾸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신기루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무언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을 테지만, ... 고전주의 시대란 실제론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문학과 예술의 어떤 작품들 속에서만 간절히 구현되는 어떤 것일지도.

1800년, 자끄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초상화이다. 본질적으로 낭만주의 시대였던 18세기, 19세기의 일부를 고전주의 열풍으로 몰고 간 것은 자끄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들 대부분은 바로크 시대의 고전적 작품들과 비교해 더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낭만적 고전주의'라는 평가를 한다. (들라크루와가 '고전적 낭만주의'라면)

Madame Recamier
Oil on canvas, 244 x 75 cm
Musee du Louvre, Paris


안정적인 구도. 세밀한 표현.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듯한 세트를 연상시킨다. 배경은 무시되며, 오직 인물을 향해서만 집중한다. 모든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의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한 인물에 의해서 평정되는 어떤 고전적 세계이다. 인물의 표정을 볼수록 삶과 그 삶이 놓인 세계를 능히 자신의 의지대로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세계. 그것이 신고전주의다. 외부 세계를 지배하는 낭만주의는 절대로 내가 있는 이 세계 속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는 신념. 스스로 그 시대의 낭만성을 부정하면서 고전주의를 향하는 양식. 그것이 자끄 루이 다비드의 고전적 양식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전주의 작품은 자끄 루이 다비드와는 전혀 다른 양식을 취한다. 

RAFFAELLO
The Granduca Madonna
1504, Oil on wood, 84 x 55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고전주의 작품들은 안정된 구도 속에서 이미 정해진 질서의 편안함, 아늑함을 표현한다. 마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품 안처럼. 모든 것은 조화롭고 행복해보인다. 세속의 번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한들, 이 세계 속에서는 금세 사라질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앞서 보았던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의 인물을 둘러싼 텅빈 배경은 인물의 고전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대비의 역할을 하지만, 산드로 라파엘로의 작품에서는 배경은 부차적인 문제다. 실은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감히 성모 마리아라는 존재를 배경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는 그런 불경한 짓은 하지 않았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세상은 정해져 있는, 원만하고 편안한 고전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High Renaissance라고도 불리는 Renaissance Classicism 시기는 정말로 의문스러운 시기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들로 조각난 상태이며, 교황청의 힘이 무력해진 틈을 타, 작은 도시 국가들이 상업을 기반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나갔던 시기이며, 그 독자적인 도시 국가의 세력이, 북유럽의 절대 왕정 초기 국가들에 의해 공격받게 될 시기의 바로 전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혁명이 시작될 것이고, 이제 기존 종교는 급격하게 그 세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대는 라파엘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1500년 경부터 그가 죽은 1520년 무렵으로만 국한된다. 그리고 이 때 다 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고전주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미술사에서는 그 이전 시기는 그냥 초기 르네상스이고 이 이후는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며,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추켜세운다. 

과연 우리는 산드로 라파엘로가 그렸듯, 저런 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문제들은 해결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삶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을까? 실은 고전주의 시대라면 문제해결의 과정도 아늑한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고전주의가 우리에게 말하는 저 목소리는 가능한 것일까?

젊은 날의 미켈란젤로는 첫 번째 피에타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왜 예수 그리스도보다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더 젊게 표현했는가, 마치 젊은 처녀의 모습으로, ... 미켈란제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신의 세계에 속한 성모 마리아에게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즉 보이지 않는 질서는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작품들은 현대의 우리로선 꿈꾸어선 안 될 어떤 신념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열망하지만, 끝내 가질 수 없는 어떤 신념과 태도를.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천재 예술가 자끄 루이 다비드는 그 신념과 태도를 인간의 의지라면 능히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세상에 내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적 질서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전주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질서에 대한 염원. 필연적 세계, 꽉찬 세계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적 열망을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가지지 못했던, 다비드가 그렇게 아꼈다는 제자 그로는 낭만주의 양식로밖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신고전주의를 열었던 세대보다 한 세대가 어린 앵그르의 작품들 대부분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앵그르가 실권을 잡았던 아카데미에서 인정을 받았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은 신념이나 태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예쁘기만 한, 그래서 역겨운 작품들만 만들어냈다. 키치 화가라고 이야기할 때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게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성실한 화가였지만, 그 성실함이 현실 세계를 인식함에 대한 태만함을 가려주지 못하는 셈이다.

안트완 장 그로가 그린 나폴레옹이다. 약간 신경질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닮은 것같지 않은가.  아마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과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같다.

안트완 장 그로의 Napleon Bonaparte on Arcole Bridge




프랑스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인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이다. 그로가 그린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얼굴 부분만 따로 떼서 들라크루아의 쇼팽 옆에 두면, 형제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아래 그림은 부게로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이다. 부게로라든가 제롬과 같은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 1층 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거대한 작품들을 보고 이 큰 걸 어떻게 그렸나 하는 의문을 안고 미술관 꼭대기의,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본다면,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부게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마치 대단한 미술 작품인 양 소개하고 전파하는 이들을 보면, 제발 그런 짓 좀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지만, 우리 시대의 순수 미술은 마치 저 딴 세상처럼 여기는 일반 대중에게 그런 짓도 약간의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저주저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게로의 작품은 고전주의 양식처럼 그렸지만, 고전주의 작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고전적 신념이나 태도, 흔들리지 않는 고전적 질서를 발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를 가슴으로 느끼기 어려운 것일까. 그래서 부게로나 제롬같은 화가들을 고전주의 화가로 오인하게 되는 것일까. 하긴 잘 알려진 필자들 중에서도 그런 표현을 버젓이 쓰고 있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