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현재와 과거

지하련 2010. 3. 24. 07:54

역사 전체로 보자면, 안정적인 성공을 구가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전쟁과 정치적 갈등, 계급 갈등의 연속이었다. 요즘 한국을 보면,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당장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인가에 정부와 정당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당장 눈 앞의 돈에 온 신경을 두고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어떻게 소외당하고 망가지는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란 우리가 지내온 세월의 결과물이다. 현재를 탓한다는 건 우리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며 우리의 반성을 부르는 행위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누구도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재를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있는 요즘, 일상은 바쁘고 긴장의 연속이며 정신 없이 흘러가기 일쑤다. 이럴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게하르트 리히터의 짧은 문장을 옮긴다. 리히터. 그는 현대적 회화의 경계를 보여주는 거장이다. 또한 현대 회화와 사진이 동일한 운명을 타고 났음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 게하르트 리히터 

 

 

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엔 너무 플라톤주의자이며, 체계주의자다. 다행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머리 속에는 끊임없이 인과율을 따지고 시스템을 따진다. 리히터의 저 불확실한 자유로움을 언제쯤 가지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영영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사유는 아래에서 위로 종적인 체계다. 하지만 그 종적인 체계도 횡적인 공간을 요구한다. 요즘 나는 횡적인 공간의 빈곤함을 자주 느낀다.

 

 

 

 

게하르트 리히터, Self Portrait x 3, 흑백인화에 유채, 49.8×59.7cm,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