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요즘 세상에 대한 생각.들.

지하련 2010. 5. 3. 12:58

 

 

지난 4월 중순, 4.19와 관련된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득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터뷰는 나오는데, 왜 당시 경찰이었던 이의 인터뷰나, 자유당의 입장에서 투표를 독려했던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들의 인터뷰는 왜 나오지 않을까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가, 현대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가 바뀐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에 이르렀다.

 

피지배의 위치에서 서서 시위를 하던 상당수가 물질적 여유,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평온함으로 인해 스스로 지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착각을 가지며, 자신이 언제 피지배였냐고 반문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지배의 계층은 별도로 존재하며(어쩌면 이것은 지배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르겠다), 피지배들끼리 자리 바꿈과 이기적 갈등과 경쟁이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불행하고 안타까웠던 천안함 사고가 터지고, 북은 금강산의 여러 시설들을 동결 조치하였다. 나는 이러한 일들이 지난 정권에서 일어났다면 한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매우 궁금하다. 지난 정부와 현재 정부, 그리고 그 때를 살던 한국 사람들을 비교해보면 너무 흥미롭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만일 천안함의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지난 정부의 책임일까? 평화의 시기는 지나고 대결의 시기로 만드는 것은 옳은 정책 판단일까? 안보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만일의 사태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바라는 만일의 사태 평화 무드가 계속 지속되어 결국 어떤 형태로든 통일이 된다는 가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때의 가정은 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고 방향이 있다. 어떤 길로 갈 수 있다면,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 그 국민의 한계가 그 나라 정부의 한계다. 그 점에선 미국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