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2010 올해의 작가: 박기원

지하련 2010. 5. 23. 22:21

 

Who’s Afraid of Museums? - Artist of the Year: Kiwon Park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2010 올해의 작가: 박기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10. 4. 6. – 5. 30.

 

 



 

나는 공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공간 속의 작품, 즉 공간과 작품이 중립적이기를 원한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환경이나 풍경은 그대로 있고, 그 위에 미세한 공기의 흐름’, 팔의 솜털이 움직이듯 한 미세한 바람처럼 어떤 자극도 없어 보이며, 방금 지나친 한 행인의 기억할 수 없는 모습과 같은 최소한의 움직임을 원한다. – 작가 노트 중에서




무더운 날씨였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미술관으로 향했다. 실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늘 보아오던 작품이 있을 꺼라 여겼다. 요즘 나의 문제는 미술 작품을 보더라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불쾌함만 잔뜩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시장 가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라고 하지만 미술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많다.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사동에서 전시를 열어본 사람이라면, 주말 인사동 갤러리의 비극성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엔 인사동의 건물 임대료가 비싸져, 여러 갤러리들이 청담동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국의 소비 문화는 순수 문화를 결국 죽이고 말 것이다.

 

실은 박기원의 작품을 보면서, ‘순수한 미술 작품을 두려워하라로 읽혔다. 그의 작품은 상업 일변도로 흐르는 한국 미술에 신선한 자극이며, 현대 미술의 한 속성 공간과 호흡하기 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관람객과 하나가 되는 열린 작품을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공간의 문제는 현대 미술에서 있어서 매우 첨예하게 다루어지는 이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the weather project’에서처럼, 현대인들은 공간을 잊고 지낸다. (참고: http://intempus.tistory.com/1178. 올라퍼 엘리아슨에 대한 리뷰)

 

어느 글에선가 곰브리치가 미술관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거리 가로수 이파리 색이며 구름이나 하늘 색이 보다 맑고 선명하게 보일 거라며, 미술관의 작품들이 주는 감동을 우회적으로 말하기도 했지만, 이제 상황은 다르다. 엔디 워홀의 팝 아트 이후, 우리는 미술 작품의 순수성과 상업성의 경계를 나누기 어려워졌다. 실은 디자인샵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이 갤러리에 걸린 미술작품보다 더 나은 미적 완성도와 뛰어난 조형 감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지한 소설가라면, 자신들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영화 따위가 아니라, 조간 신문의 사회면이라는 사실을 알 듯, 뛰어난 현대미술가라면, 어떤 주제와 소재로 작품을 해야 할 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두 달 동안 준비해왔다. 공간으로 구성된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속의 관람객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관람객이 올라와 연기를 보여주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미니멀한 공간의 구성 위로 관람객은 작품의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오랜 만에 한국 작가의 좋은 전시를 보았다. 박기원과 같은 작가들이 있기에 한국 미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기원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