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단색회화의 매력 - 조엘 킹 전시, 그림손갤러리

지하련 2011. 5. 8. 09:24



조엘 킹 Joel King

Intervals
2011. 5. 4 - 17
Grimson Gallery




번잡스러운 인사동 길을 지나가다가 수도약국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림손 갤러리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고다 공원에서부터 안국동 방향으로만 갈 뿐입니다.

하지만 잠시 알 수 없는 골목길로 한 번 걸어 들어가 보면, 작고 아담한 까페라든가, 도심 한 가운데의 고요한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입니다. 아주 잠시, 짧은 거리의 모험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도심의 근사한 침묵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침묵처럼 조엘 킹의 작품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단색조의 회화를 ‘모노크롬(Monochrome)’이라고 합니다. 이 회화 양식은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고, 등장과 함께 많은 비평가들의 지지와 함께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단색 회화에 심취해 각기 다른 작품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사각의 캔버스에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놓은 작품들을 각기 다른 작가들이 그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네요. 실은 그냥 하나의 색들이거든요. 심지어 이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릴 수 있을까요?

이 글을 보시는 분이시라면, 이제부터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서 단색 회화를 보면, 정말 한 가지 색으로만 구성했는지, 유화물감으로만 그렸는지, 캔버스에다 그렸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시면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똑같이 흰색 작품인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물감으로 구할 수 있는 흰 색이 아니고, 캔버스에 그린 것도 아니며, 흰색 물감을 위주로 다른 색을 섞은 것 같기도 하고, 두터운 느낌을 주기 위해 다른 물질을 섞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옆에 있는 작가나 큐레이터에게 이 색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세요. 그러면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듣게 될 지도 모릅니다.)

조엘 킹의 작품도 그렇습니다. 그의 작품 밑에 그는 ‘mixed media on wood’라고 적었습니다. 나무 판 위에 여러 매체를 사용한 것입니다. 마치 하이델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하이델베르그는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인공적인 실험 조건이나 수학적 가정 속에서만 법칙이지, 실제 자연 속에서, 이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즉 실제로는 실험 조건이 이 자연 속에서 구성되기는 불가능하기에 자연 법칙은 불확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하게 흰 색이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하게 흰 색을 찾아보자는 시도가 있겠죠. 그 다음에는 색 자체에 대한 탐구와 모험이 이어집니다. 색조의 회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조엘 킹의 작품들도 이런 미술사적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약간 어려운 부분으로 들어갔네요. 하지만 작품을 보는 데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면 머리가 아플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감상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미술 작품은 느끼고 감동받는 것이지,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여하튼 조엘 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그림은 색칠을 한 평면 여러 개를 연작으로 엮거나 하나의 화폭에 여러 차례 덧칠을 해서 색을 포개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결과 책으로 채워진 캔버스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미묘하고, 서로 연관돼 있고 또 조응하며 겹겹이 쌓여진 의미와 해석들이 자연스레 녹아 있게 된다.”

작가의 말이 어렵지만, 그의 의도는 이해될 것입니다.

전시장은 조용하고 감상하게 좋습니다. 혹시 오늘 인사동에 나갈 일이 있다면, 그림손 갤러리에 가서 전시를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색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를 한 번 경험해보세요.


* 이미지를 구하지 못해 도록의 일부를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