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미지의 칠월

지하련 2011. 7. 5. 07:00



어두컴컴한 하늘 너머, 마치 어떤 이가 황금빛 바가지 가득 물을 담아 아래로 붓는 듯, 세차게 긴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 끝없이 모래의 대지가 펼쳐진 서남아시아에서 넘어와, 어떤 우여곡절 끝에 검고 딱딱하게 변한 아스팔트는 단단했고 중국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져 서울까지 운반된 우산은 튼튼했다.

방송통신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란 늘 그렇듯 끊김 없는 시간과 여유로운 집중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장인 내가 이것이라도 하고 있음이리라.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과연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세차게 비가 내렸다. 남청 색 신발이 빗물에 젖었다. 빗소리에 가려, 차소리, 걸음소리, 숨소리, … … 모든 일상의 소리가 묻혔다.

비 속에서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를 꺼냈다. 그리고 필립 글라스의 ‘Forgetting’을 들었다. Forgetting, Forgetting, …


“…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게 매달릴 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 르네 마그리트



비 속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어느 남자.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근처, 젖은 도로 위, 혹은 얇은 수면 위.

마그리트의 말대로, 우리는 의지하기 위해 의미를 찾는다. 기대기 위해 의미를 구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그 어떤 독립성도 없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구하지 말고, 의미에게서 멀리 달아나야 하는 것일까.

세차게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