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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과연 한국에서 순수 미술 작품 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은 몇 명쯤 될까? 또는 반대로 돈을 잃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많은 돈을 잃을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떼돈을 번 사람은 없다. 아주 오래 동안 미술 작품 수집을 해 온 이라면 소장한 작품들 중 일부를 팔아 수익을 가져갔을 지 모르지만, 아마 그가 챙긴 수익은 그 동안 그가 투자한 금액에 비한다면 초라할 것임에 분명하다. ‘미술 투자’라는 단어가 국내에 유행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고, 장기 투자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통하는 ‘미술 투자’에 대한 수익을 논하기에는 아직 한국 미술 시장은 그 역사가 너무 짧고 너무 불투명하다.

반대로 이런 질문을 해보자. 과연 미술 작품은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터 투자의 대상이 된 것일까? 엄밀하게 말해 미술 작품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미술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진귀하다는 측면에서 수집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수집가들 사이에서 거래될 순 있지만, 그들에게서 조차도 미술작품은 투자 이전에 감상과 향유의 대상일 것이다.

이렇게 미술 작품을 바라볼 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순수 미술에 대한 시각이 보다 명료해지고 뚜렷해진다.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미술 작품은 어렵고 불투명하고 마치 속는 기분이 들겠지만, 감상과 향유의 대상으로서의 미술 작품을 볼 때면, 작품은 보는 이들마다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 것이다.

현대 미술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이 신대륙(미국) 전시가 시작되었던 때쯤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충분한 경제력을 가졌지만, 인상주의 작품을 갖고 싶었던 미국인들의 수집 열풍이 인상주의 작품들의 가격을 급등하게 만들었다. 감동적이고 진귀한 예술 작품 하나 집에 걸고 싶어한 그들의 욕구가 현대 미술 시장의 크기를 키운 것이지, 돈을 벌려는 탐욕적인 목적으로 미술 시장이 탄생하고 급성장한 것은 아니다.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당연히 위작이 나오게 되고 누군가는 대량으로 구입해 다시 재판매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현대 미술 시장은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솔직히 무턱대고 이제 미술 투자가 트렌드니, 대세니 하는 말을 하면서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작품을 보는 이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술 투자에 대한 투자 방법이나 노하우, 또는 금융 지식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다.

르네상스 시대의 수집가들에게 예술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자,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며, 그 이전 시대라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기 어려웠던 첨단 기술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수집가들 중의 일부는 탁월한 안목과 혜안으로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삶을 지원하며 작품을 구입해 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작품을 재판매하여 수익을 얻지 않았다. 도리어 저택의 회랑에 작품을 걸어두고 오는 손님들에게 그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갤러리’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그들이 수집했던 작품들 중의 대부분은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이름없는 화가들의 작품들이 되었고, 심지어는 그림보다 액자가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기도 한다. 가끔 변하지 않는 명성과 예술성으로 후대에까지 인정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예라고 할까. 아마 모네, 피사로, 카유보트, 르느와르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젊은 시절, 혹은 무명 시절을 떠올린다면, 그들이 계속 작품 활동을 했고 살아남아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은 것이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현대 한국 미술에서는 이우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도리어 그 당대는 무시당하고 무명에 가까웠던 예술가가 후대에 명성을 얻고 그 진귀함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까. 카라바지오가 그랬고 얀 베르미르가 그랬으며, 반 고흐도 또한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예는 무수히 들 수 있다)

미술 작품 투자만큼 철저하게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감식안, 또는 통찰과 혜안이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술 작품 투자라는 생각을 잊어버리자. 그리고 그건 너무 먼 이야기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중에 천 억 원 정도 있다면 한 번 해보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미술 작품 감상부터 할 줄 아는 제대로 된 수집가부터 되는 것이 빠른 길이다.

그렇다면 미술 감상의 태도는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나는 이 글을 읽는 이에게 시집을 이 때까지 몇 권을 읽었는지 묻고 싶다. 한 권? 두 권?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는 시 쓰기, 시 읽기를 배우지만, 정작 시집을 돈 주고 사서 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뭐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는 우리가 사는 은하계 너머의, 아주 이질적인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림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부터 그림 보기, 그림 그리기를 배우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 1년에 미술관에 몇 번이나 갈까?

정직하게 고백하자. 그만큼 시 읽기나 미술 작품 보기는 너무 어려운 일들 중의 하나다. 미술 작품 감상이란 어려운 일이다. 맨 처음엔 미술 작품을 보기는 하지만, 그냥 보는 것일 뿐, 아무 것도 모른다. 시 읽기도 마찬가지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한 곡의 음악에 익숙해지기 위해 우리 귀는 무수하게 반복 청취를 한다. 그런데 미술도 마찬가지다. 미술 감상의 태도는 먼저 많이 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보고 뭔지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건 어려운 종류의 일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예로부터 제대로 된 감상을 즐길 수 있는 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 *
위 글 중간에 작품을 넣으려고 하였으나 ,문맥이 끊어지는 듯해 아래에 도판 몇 개를 옮기고 설명을 간단하게 달았다. 작품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wikipedia.org)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Judith Beheading Holofernes(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Oil on canvas 
145 x 195 cm, 1598~1599 (로마 국립 고전회화관 소장)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이런 작품을 좋아했던 이가 몇 명쯤 될까? 그렇다면 현대에는? 솔직히 요즘 시대에도 이 작품을 집 거실에 걸어둘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감상 태도를 가지란 어려운 일이다. 카라바지오는 잘 알려져 있듯이 난봉꾼에 살인자였으며, 도피자였다. 그리고 그의 과격한, 시각적 진실에 무게를 두었던 바로크적 태도로 인해 그는 몇 세기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Johannes Jan Vermeer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Oil on canvas,
44.5x39cm, 1666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소장)

얀 베르메르는 19세기 후반에서야 비로소 유럽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예술가이다. 현대에는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100년 남짓이다. 이것도 너무 신기해서 베르메르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들 중 일부는 위작으로 이미 판명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뵐플린을 위시한 걸출한 미술사가들로 인해 바로크 미술이 제대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 때 베르메르도 새롭게 부각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Vincent Van Gogh
Prisoners Exercising
Oil on canvas
80×64cm, 1890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반 고흐의 작품은 여러 번 보았다.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만난 반 고흐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거친 붓 터치로 내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뭐랄까. 뾰족한 호미 끝으로 내 가슴을 긁는 듯한... 종종 나는 반 고흐를 좋아한다는 이를 만나면, 아주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반 고흐가 정신병자라는 건 알고 계시죠? 우리는 정신 병자가 그린 작품을 좋아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정신병적인 기질이 다분한 거랍니다." 미술 작품 감상이란 종종 자기 영혼(정신)의 내밀한 영역까지도 작가나 작품에게 기대는 것을 의미한다. 감상이란 작품을 받아들이고 감동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좋은 예술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고 좋은 감상이란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다.












Comment +4

  •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예술!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 종종 트렌디한 현상이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트렌드에 매우 민감한 것도 좋지 않은 듯 해요. 예술은 즐겨야 하는 거죠. 감동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거예요. 순수 예술이 어려운 이유는 감동받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이 투여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만, 나중에는 가치 있는 취미활동이 될 수 있죠. ^^

  • 쇼팽 검색을 하다 들어오게 되었는데 여러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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