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일요일의 단상, 혹은 책읽기의 사소한 위안

지하련 2011. 12. 4. 23:01


책을 집중해 읽을 시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이제서야 책 읽는 재미, 문맥 속에서 세상의 비밀을 엿보는 기쁨을 알게 되는 듯 한데 ...

얼마 전 펼친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Wirklichkeiten in denen wir leben, 양태종 옮김, 고려대출판부)의 한 구절은 올해 읽었던 어느 문장들 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20세기 철학을 자극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그것은 우리와 맞닥뜨리는 횟수가 늘어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 한스 블루멘베르크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20세기의 생각들은 시작되었을 지 모르겠다. 블루멘베르크의 표현대로... 하지만 몇 세기 전 17세기의 존 단(John Donne)은 하나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했지.

And now good morrow to our waking souls,
Which watch not one another out of fear;
For love all love of other sights controls,
And makes one little room an everywhere,
Let sea-discoverers to new worlds have gone,
let maps to others, worlds on worlds have shown:
Let us possess one world; each hath one, and is one.
(
그리고 지금 우리 깨어나는 영혼들에게 아침 인사를,
두려움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던 건 아니라네.
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모든 사랑을 막아주고, 
그리고 이 작은 공간이 전체의 세계가 되네,
바다 위의 발견자들은 새로운 세계로 가도록 놔두고,
지도를 다른 이들에게, 세계들에 대한  세계들을 보여주며,
우리 하나의 세계를, 각자 하나의 세계를, 그리고 하나가 될 세계를 가지네.)

- 'The Good-Morrow'의 2번째 연.
(번역은 방송통신대학 교재 - 영국 문학의 이해 - 주석을 참조하여 직접 함)


존 단의 근대성(Modernity)는 지도 위의 어떤 세계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하나의 세계, 서로 공유하게 될 어떤 세계. 즉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어떤 것을 꿈꾸는 것이다. 이론이 현실이 되어 퍼져나가는 것.

그런데 20세기 이후의 문학과 철학 속에서는 실제 현실이 이론화되고 예술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담론만 넘쳐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잠자리에 들기 전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대부분은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 된다. 어렸을 때, 마흔 이상 되는 이들은 이 세상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강력하게 동의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흔들거리는 어느 일요일 밤,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은 잠시나마 나의 위안이 되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