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하련 2003. 12. 9. 20:52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지음), 차경아(옮김), 문예출판사


1997년 가을에 이 책을 구입했으니까, 벌써 6년이 지나고 있는 셈이다. 대학 4학년이었으리라. 대학 도서관 구석진 곳에서 문고판으로 나와있는 이 책을 읽었다. 그 문고판 책에는 '오스트리아 어느 도시에서의 청춘'이 첫 번째로 실려 있었는데, 그 때, "쾌청한 10월, 라데츠키 가로부터 오노라면 우리는 시립 극장 옆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한 무리의 나무를 보게 된다. 열매를 맺지 않는 저 검붉은 태양의 벚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서 있는 첫 번째 나무는 가을과 함께 불타올라, 천사가 떨어뜨리고 간 횃불처럼, 어울리지 않게 금빛 찬란한 얼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나무는 불타고 있다. 그리고 가을 바람도 서리도 나무의 불을 끌 수는 없다."라고 시작되는 문단을 읽고 경악했었다. 그 자리에서 이 짧은 단편을 다 읽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6년이 흐르고 있다. 그 땐 대학원을 들어갈 생각이었고 여기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시험에는 그다지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듯 하다. 계속 떨어지기만 했으니.

우스개 소리 삼아 '내가 떨어지는 이유는 날 경쟁상대로 보는 대학 교수들 때문이야'라고 말하곤 하지만, 썩 유쾌해지지 못했다. 나로서도 왜 내가 대학원에 들어가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의아스러운 지경이니.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대학원이 대학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처지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서른을 넘겼다. 바흐만은 서른 살을 어떻게 보내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녀가 죽은 그 해 가을,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금방 서른 살이 지나버렸네. 낮에 잠시 책을 읽다 말고 누워, '죽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 세상을 살기 싫을 때, 싫증이 날 때, 혹은 다른, 어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유로 삶이 버거워졌을 때 죽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잉게보르그 바흐만도 죽었을까. 오늘밤 자기 전에 그녀의 시집을 읽어야겠다. 아주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