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스펙터클 사회과 예술 실천 - 'noon'을 읽고

지하련 2012. 3. 5. 10:38


Noon 1호 - 10점
Noon 편집부 엮음/GB(월간지)



2009년에 창간호가 나온 후 소식이 없는 잡지 ‘noon -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and visual culutre’를 읽었다. 주제는 violence of the spectacle이다. 아마 몇 명은 바로 예상하겠지만, 이 주제는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타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언급된 그 스펙타클에 대한 것이다. 기 드보르는 이 놀라운 저작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스펙타클을 새롭게 정의 내린다.


“스펙타클은 일련의 이미지들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다.”



기 드보르는 이미지들로 구성되는 스펙타클이 아니라 감각적 이미지들의 구성체로서의 스펙타클이 지배하는 사회의 스펙타클 환경(상황)에 주목하고 과감하게 이것을 스펙타클이라고 정의내린다. 이런 측면에서 히사시 무로이의 아래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오늘날 인간은 각종 매체를 통해 조성된 ‘현실의 연장세계’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현실의 연장세계란 인간이 ‘현실’이라고 믿는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신호와 정보로 구성된 세계를 의미한다.”



기 드보르의 책을 번역본으로 두 번 정도 읽었지만, 그 땐 - 벌써 십수년 전의 학부시절 -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잡지에서 스펙터클에 대해 주목할 만한 언급을 하고 있는 실베르 로트랑제와 배영달은 기 드보르 -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 르페브르Henri Lefebvre -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를 연결 지으며 스펙타클 사회의 비극을 학구적 언어로, 아주 건조하고 논리적 화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보드리야르 사상이 가지는 비극성으로 인해, 그의 사상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이론이 현실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의 참혹함과 그 이론의 무책임함에 주목하지 않은 채 열광하는 철부지 인문학 수입상들을 경멸해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은 보드리야르의 문제가 아니라 보드리야르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는 이들 탓이겠지만.


“사람들은 유희 속으로 들어가는 한, 스펙터클 속에서 가짜인 모든 것이 진짜가 된다.”
- 보드리야르



그리고 21세기 초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분간하지 못하는 뉴미디어 시대가 펼쳐졌다. 이는 미디어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스펙터클에 현혹된 우리들의 문제이다. 미디어가 감각을 기만하고 기만당한 감각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감각이란 없다. 대신 비판적 이성이 있을 뿐이지만, 이미 그 이성은 탐욕적 금융 자본주의 아래에서 돈 만드는(making money) 도구적 이성이 된 지 오래다(아도르노와 호르크 하이머가 21세기 초를 경험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런 올드-뉴미디어들의 총체적 문제가 바로 21세기적 스펙터클의 사회이다. 그리하여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직접 경험한 모든 것이 ‘재현’으로 물러난다. 삶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어떤 것 속에 우리들의 삶이, 일상이 퍼즐처럼 끼어 맞춰지는 형국이다. 실베르 로트랑제는 폴 비릴리오을 이렇게 인용한다.


사회적-정치적 공간의 동질화 - 원격 현전(telepresense), 편재성 환영(illusion of ubiquity) - 는 속도로 생산된다. 속도가 폭력의 형식인 것이다. 즉석 응답은 공간을 폐기하며, 즉석의 시간성은 실재의 일반화된 탈실재화를 유발하면서 기억과 역사를 말소한다. (The homogeneisation of the socio-political space - telepresence, the illusion of ubiquity - was produced by speed, and speed is a form of violence. lnstant response abolishes space, instantaneity cancels memory and history, provoking a generalized derealization of reality.)


다시 풀어 이야기하자면, 이제 공간의 거리는 무의미하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미디어 채널을 통해 공간은 동질화된다. 이 동질화란 하나로 만들어진 스펙터클이 거의 동시에 전 세계를 휘감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9.11 사태가 터졌을 때 모든 미디어가 그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던 것처럼. SNS는 내 물리적 존재가 가지는 공간성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편재하는 가상의 실재가 되며, 인터넷 상의 프로파일과 히스토리로 존재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은 바로바로 수정, 삭제가 가능해진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그건 구글Google 서버에 저장된 기록이 전부일 것이다. 동질화된 공간의 무자비한 속도는 축적되는 기억과 지나간 역사를 지우며, 브레이크가 상실된 가속패달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진짜와 가짜가 사라진 액체 형태의 스펙터클 시공간을 만들게 될 것이다. 

기술로 더욱 강력하게 무장하고 확장되는 스펙터클 앞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이 미술 잡지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진 못하고 있다. 다만 잡지 서두에 실린 니콜라 부리요와의 인터뷰 한 대목을 인용해볼까 한다.


“아르키펠라고(Archipelago) 형식은 단연 얼터모던의 중심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상호연결된 단수성을 정의한다. 오늘날의 모더니티는 독립된 소군도적일 수 밖에 없다. 이론을 통합한다기보다는 아이디어와 형식, 인물을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영역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통로이며, 표준화되거나 동질화된 영역이라기 보다는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서 제시되는 스펙터클 앞에서 예술은, 니콜라 부리요의 언급처럼 상호연결된 단수성으로 저항하고 있지 않을까. 스펙터클의 분석과 해체야 말로 21세기 예술가들의 사명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니콜라 부리요의 저 언급은 짧지만, 무자비한 스펙터클 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예술 실천의 단초로 해석될 수 있다. 



* 아래는 위 본문에서 언급한 책들이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라면 읽어볼 만한 리스트다. 읽기 쉬운 책들은 아니지만.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이경숙(옮김) 현실문화연구(* 현재 절판)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대표적인 저서. 그러나 현재 절판이고 번역에 대해서도 다소 말이 있었던 책. 아래는 영역본이다.



Society of the Spectacle (영역본)


Comments on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그리고 '스펙터클의 사회'에 대한 기 드보르의 Comments!


토탈 스크린
장 보드리야르 저/배영달

장 보드리야르의 토탈 스크린! 보드리야르의 극단적 허무주의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겐 읽어봐도 좋으리라.

현대세계의 일상성
앙리 르페브르 저/박정자

앙리 르페브르의 이 책을 번역해 소개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지만,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실은 그만큼 번역이 어려운 책이었던 셈이지만, 박정자 교수의 노고가 안타깝다고 해야할 것이다.
 
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 (Classics in Communication and Mass Culture)
Everyday Life in the Modern World  (영역본)


관계의 미학
니꼴라 부리요 저/현지연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 미학' 번역본이다. 번역된다는 소문만 전해들었고, 실제 번역본이 나왔다는 사실은 오늘 검색해보고 알게 되었다. 니콜라 부리요는 미술계에선 꽤나 유명한 이론가이며, 그의 관계 미학은 한 때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기도 했다. 학문의 세계 종사자들과의 인연이 사라진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독서가 전부다.

속도와 정치
폴 비릴리오 저/이재원 역

폴 비릴리오. 아직 읽지 않은 비릴리오. 한 번 읽어봐야 겠다.


noon은 창간호를 내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광주비엔날레에서 낸 책인데, 반응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론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미술 전문 잡지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사례를 다시 드러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아르코에서 나왔던 '볼'은 정권이 바뀌자 사라졌고(황당한 사건들 중의 하나), ... ...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듯 싶지만, 그건 호사가들의 수다에 지나지 않고 진지한 관심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