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나의 즐거운 일기, 난니 모레티

지하련 2002. 10. 12. 15:43



나의 즐거운 일기

감독 : 난니 모레티
주연 : 난니 모레티, 제니퍼 빌즈
장르 : 코미디,
제작년도 : 1994년


1.
하얀 종이마다 누런 개미가 한 마리씩 눌려 죽어있었다. 사무실에서 프린터 해 온 난니 모레티가 프랑스 영화잡지인 Positif와 한 인터뷰 기사 위에. '개미가 눌려있는 인터뷰'

실은 집에 개미가 너무 많다. 오늘 아침엔 늦게 일어나 택시를 잡아탔는데, 가방에 개미가 붙어서 기어가고 있었다. 그냥 무심히 넘어갔지만, 객관적으로 개미가 너무 많다. (나에게도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존재했던가)

2.
우리 집에 개미가 많다고 해서 세상에 종말이 오거나 몇 년 동안 구름에 갇혀 해를 보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인 개미 한 마리가 저 세상에 가서 하느님(이 세상 사람들이 많이 믿고 있는)한테 '세상을 없애줘요'라든가 '구름으로 덮어주세요'라고 한다면 … 그 때 마침 잠시 한 눈을 팔던 하느님이 은하계의 사소한 점일 뿐인 지구를 저 멀리 어두운 블랙홀로 집어넣어버린다거나 물의 별을 구름의 별로 만들어버린다거나 한다면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하철 속에서 '주 예수를 믿으세요.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라고 떠들던 사람에게 했다. 그랬더니 뭐라고 계속 떠들었다. 들어보았는가. 의미 없는 동어반복의 연속. 아마 주 예수도 그 의미없는 동어반복을 듣는다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하물며 참을성없는 내가 들었으니.

"젠장, 당신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는군요."

라고 큰소리로 말하곤 지하철에서 내렸다.

3.
Positif에 실린 난니의 인터뷰는 아무런 내용도 없다. 무척 지루하다. 이걸 번역한 사람이나 난니와 인터뷰를 한 Positif 기자가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다. <나의 즐거운 일기>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도시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허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냉소라는 것이 자기자신한테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낸 작품이다.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라 결정적인 한계. (이 영화에 결정적인 장면은 무척 많다. 플래시 댄스의 그 여자가 나온 장면은 가슴이 미어졌다. 나도 영화감독이 되어야지. 그럼 이미연이나 고소영을 만날 수 있겠지. 아예 감독이면서 주인공이 되면 더욱 좋을 것같아)

이 영화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는 점에서 좋긴 했지만.

4.
자, 다시 개미 이야기로 돌아가자. 난니 모레티가 우리 집에 와서 내 무릎 위를 올라가고 있는 개미를 보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아마 그는,

"저는 항상 소수의 편에 설 것입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개미의 수는, 하나씩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몇 만 마리는 될 것이다. 하나의 생명과 몇 만의 생명의 공존과 대결. 이게 내가 기거하는 사각의 공간 속에서의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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