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예술의 끝 - 라이너 쿤체

지하련 2003. 12. 15. 17:56

예술의 끝




넌 그럼 안 돼, 라고 부엉이가 뇌조한테 말했다.
넌 태양을 노래하면 안 돼.
태양은 중요하지 않아.

뇌조는
태양을 자신의 詩에서 빼어버렸다.

넌 이제야 예술가로구나
라고 부엉이는 뇌조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름답게 캄캄해졌다.


*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 전영애 옮김, 열음사, 1989)




‘아름답게 캄캄해졌다’는 표현은 참 좋다. 독일어로는 ‘Und es war schon finster’이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이 번역시집은 내가 대학 가기도 전에 출판되어, 내가 이 시집을 알게 되었던 90년대 중반 무렵에 벌써 희귀시집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가끔 지방의 도시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그 곳의 작은 서점에 들려 오래된 책 찾는 게 정해진 일처럼 되어버렸다.

위 시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극적인 역설, 혹은 반어. 하긴 아름답게 떠오르는 태양을 노래한 시는 많아도 아름답게 깜깜해지는 어둠을 노래하지는 않으니.

라이너 쿤체는 동독 출신으로 정치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왔다. 최근 그의 작품 경향이 어떤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위의 시는 너무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