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지하련 2013. 3. 5. 00:37

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김희정(옮김), 부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저자 자신의 체험 이야기를 하다가 영영학자나 고생물학자의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확보된 듯하면서도 전문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내 평가는, 과격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사카린이 위험한 감미료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발암 물질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카린은 보기 드물게 안전한 인공 감미료다. (참고 기사: 사카린은 억울하다… 착한물질에 씐 주홍글씨 )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가령 ‘콩은 무조건 좋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적극적인 형태의 채식주의인 ‘비건 생식’이 도덕적으로 고결하며, 우리 몸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긴다면? 그리고 저자인 리어 키스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건vegan - 유제품, 달걀류 등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 단순채식주의자보다 더 철저함.)

비건주의자였던 저자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20년 동안 그것을 실천하였고 각종 질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잘못된 식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쳤음을, 그리고 그 고백과 함께 자신과 같은 잘못된 결정을 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문명 자체가 잘못되었고 탄수화물(특히 밀)이 중심이 된 농업 방식이 우리의 몸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육류의 섭취가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5장 - 지방에 새겨진 주홍글씨’에서 정점을 이룬다.

지난 15년 사이 미국 내 지방 소비량은 거의 25퍼센트가 줄었다. 모두 의학계의 계속적인 공갈 협박과, 유사 식품, 유사 지방을 기꺼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식품업계 덕택이다. 값싼 식물성 기름의 다가 불포화지방을 본능적으로 포화 지방을 원하는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면 화학적 변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5퍼센트면 엄청난 감소량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더 건강해졌을까? 그 반대다. 보통 동물성 식품이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질병이 거의 전염병 수준으로 치솟았다. (234쪽) 


케냐 마사이 족은 거의 완전히 고기, 우유, 피로만 된 식사를 한다. 마사이 족의 젊은 전사가 날마다 취하는 동물성 지방은 300그램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평균 160 이하로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심장 질환은 병 자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을 정도다. 그들의 사체를 부검해 보면 동맥 혈전(혈관 벽에 생기는 플라크)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사이 족을 연구한 만은 지방 가설을 “금세기 최고의 공공 보건 스캔들”이라 부르며,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이라고 선언했다. (278쪽) 



채식의 배신 - 10점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저자는 도리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가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는 장애와 사망의 원인은 대부분 곡물과 당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높아진 인슐린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질병들이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은 모두 인슐린으로 인해 발병한다. 이 질병들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죽음의 사자다. 
(…) “탄수화물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겨우 참을 만한 정도의 탄수화물과 끔찍한 탄수화물이 있을 뿐”이라고 이즈 박사 부부는 말한다.” (257쪽)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산업화된 농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소나 돼지에게 옥수수 등으로 만든 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지원금 혜택으로 인해 과잉 생산된 옥수수 등과 같은 작물이 정상적인 소비 경로를 거치지 못하자, 믿을 수 없는 싼 가격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키워진 소나 돼지, 닭 등은 영양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방목되어 풀 등을 먹고 자란 것들과 비교해)에서 도축되어,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며 그러는 동안 우리의 몸도 병 들어간다고. 

맹목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식탁도 지배하고 있다. 가령 한국에서는 모유가 분유보다 낫다고 여기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분유 회사(네슬레 등)의 광고와 로비로 분유가 모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아직도 농업이 농부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진 않겠지만, … 

그 낮은 가격(곡물의)과 생산 비용의 차액(최 일선 농부의 생산 비용의 적자)은 미 연방 정부의 돈, 다시 말해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메웠고, 전 세계의 소규모 농장들과 지역 경제를 망쳤다(값싼 미국의 농산물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 지역 농부들이 끝없는 가난의 터널로 들어섰다. 수입된 미 농산물의 가격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가격보다 더 저렴했던 탓에). 이제 그들은 종자 자체에 낸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전 인류의 지식과 노동, 유산을 담은 그 종자들의 유전자가 이제는 몬샌토와 콘애그라, ADM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들은 식량 과두 체제의 우두머리, 생명 그 자체의 가장(家長) 지위에 등극했다. 파일은 “농업에 대한 소유권, 유전자 정보, 경작 행위, 이윤은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 한 번도 흙을 묻혀 본 적도 없는 손들 말이다.”라고 개탄한다. 이들은 사회적인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마케팅을 할 때는 마르고 닳도록 이용되지만 전혀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굶주린 어린이들, 이 어린이들을 먹겨 살릴 만한 의도와 능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저들 때문에 농장을 잃은 전 세계 방방곡곡의 농부들 누구에게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주주에게만 책임감을 느낄 뿐이다. (196쪽 - 197쪽, 인용 본문의 ( ) 안 문장은 필자가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임.)  


책은 유기체적이며 순환론적 우주론을 이야기하면서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농업은 근본적으로 반-자연적 활동이며, 농업의 확장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고스란히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투석기에서 핵폭탄으로 이르는 한 길’이라는 표현을 쓴 아도르노가 떠올랐다. 하긴 문명의 문제란, 현대 지성사의 주된 관심사이며, 심지어 ‘반-지성주의’라고 지칭하니까.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비건주의자들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반-지성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고대적 관점의 회복, 또는 문명 이전 단계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가, 개인적 실천법으로 ‘아이를 낳지 말고, 차를 가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기르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읽기에도 과격한 어조로 쓰여진 책이라,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아마존과 인터넷 서점 및 포탈 사이트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았다. 아마존 리뷰(총 리뷰 201개)에서는 거의 절반(99개)이 별 다섯 개를, 50개의 리뷰는 별 한 개를 주었다. 그러나 국내의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 아마 채식주의자들, 혹은 채식옹호론자들의 걱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극단적 채식의 위험함,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이 끼치는 악영향, 그리고 그것이 세계의 빈곤 지역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고찰, 동물성 지방에 대한 심각한 오해, 콩의 효과에 대한 맹신 등은 유익하기만 했다(한국 식단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된장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된장은 콩의 발효시켜 콩의 유해한 성분을 희석시키고 그리고 조리 과정도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 책의 과격한 어조만큼이나 이 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리뷰의 어조도 과격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네이버로 가서 ‘비건’이라고 검색해보라. 그러면서 많은 쇼핑몰이 나온다. 즉 ‘비건’도 비즈니스의 일부다. 이 책의 과격한 어조는 잊고(저자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회한과 통탄이라고 이해해주자), 책의 내용을 읽고 전혀 설득력이 없는가 돌이켜보자. 이 점에서 이 책에서는 참고 문헌 리스트 정도를 제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