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마음, 쓸쓸한.

지하련 2013. 9. 16. 20:04




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포지션>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p://blog.naver.com/lalalal22 에서 읽었습니다.) 




역시 최승자라고 중얼거린다. 이런 느낌, ... 하지만 이 느낌마저도 '소비의 사회' 속에서 희석되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마저도 소비되는 시대. 끔찍하기만 하다. 그렇게 끔찍한 2013년의 가을. 



나는 내일 새벽, 내가 스무 해 넘게 살아온 도시로, 노트북과 서류와 책을 안고 내려간다. 아마 내려가서도 바쁘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그래도 나이는 먹는다. 어쩌면 시간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무덤을 향해가고 언젠가 내 무덤에도 풀이 자랄 것이다. 사방을 둘러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