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하련 2013. 11. 26. 05:53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지음), 예담 





연애의 기억일까, 아니면 사랑의 기억일까. 딱 세 명만 나오는 이 소설은 일종의 연애 편지이며,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배경 삽화에 머물고 그저 흘러갈 뿐이다. 말줄임표가 유독 많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연애라고 할 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고,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결국 모든 것은 죽어 사라지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남긴 흔적이라는 건 우리 마음의 위로를 위한 변명거리일 뿐이다. 


소설은 못 생긴 여자를 향한 사랑을 담고 있다지만, 실제로 그녀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녀가 못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도리어 내 경험 상 못 생긴 여자가 클래식 음악과 미술에 조예 깊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반대로 문화적 깊이를 가진 이들 모두 예쁜 여자가 아닐까 하는 편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 나온 그녀는 못 생기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못 생긴 여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너무 진지한 소설만 읽은 탓일까. 독자들은 이런 소설을 읽을 것이고 소설가들은 이런 소설을 쓸 것이다. 나의 문제다. 세상은 시간이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사랑도 피폐해져 진심어린 사랑 따윈 부서진 개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요즘, 사랑 이야기가 뭘까 싶다. 나의 문제다. 사랑은 없고 현실만 남은 내 문제다. 아마 살아남은 그들에게도 사랑은 사라지고 현실만 남게 될 것이지만, 소설가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실은 그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 거친 현실 속에서 지쳐 죽어갈 때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남는 건 사랑’뿐이더라고. 


이 소설을 선뜻 권할 마음은 없다. 몇 년 전 내가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한 것은 대학 선배의 소설이면서 책 뒤에 시디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디는 수 백장 시디 더미 속에서 길을 잃었고 나는 현실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으니, 거참. 


박민규의 다른 소설을 읽은 바 없으니, 소설에 대해서 평하기도 그렇다. 다만 연애 소설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이니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저 | 예담 | 2009.07.2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