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바로크, 신정아

지하련 2007. 3. 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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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신정아(지음), 살림지식총서143


이런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바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 단어에 대한 정의와 해설을 해주는 책이 있다는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책이 있다는 것일 뿐, 이 책의 저자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도 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래서 바로크의 전 양식인 매너리즘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으며, 고전주의적 바로크와 낭만적 바로크에 대한 구분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해선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의 전문 서적 집필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책을 만들 생각을 할까? 정말 난감한 일이다.

차라리 이 책의 저자가 ‘바로크 문학’이나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적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 이 책은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신정아 씨가 지은 책이 아닙니다. 아래 알라딘 링크를 걸어둡니다. 이 책을 지은 신정아 씨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고전주의 작가인 라신느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예술사에서는 라신느를 바로크 고전주의 작가로 파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정아 씨는 바로크 문학 전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문학에서의 관점은 다소 다릅니다만) 하지만 이 책에서 서술된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설명들 중 구체적이지 못하거나 잘못된 부분도 드러 있습니다. 위 서평은 이러한 지적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2017년 12월에 덧붙임.

누군가가 이 책에 대해 검색하여 들어와 읽었다. 내가 다시 읽어보니, 너무 성의없는 서평이라 불쾌해질 듯 싶다. '바로크' 양식은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이어진 서양 예술의 한 양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구사해야 하는데, 가령 기원후 헬레니즘 양식에 대해서도 '바로크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양식이 가지는 어떤 성격이나 특성을 구체적인 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음악에서, 미술에서, 문학에서 이 양식이 드러나지만 이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약간씩 상이한 지점들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에서 바로크 사이에 위치하지만, 라신느는 온전히 바로크 문학가라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위 책은 음악사나 미술사 전문가가 아닌 저자가 무리하게 다른 예술 장르까지 포함시켜 설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하우저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바로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저자의 전문 분야이지만, 이 방식으로 비전문 분야인 다른 예술까지 설명하고자 하였기에 위와 같은 서평이 나왔다.  


바로크 -
신정아 지음/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