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떤 단상.

지하련 2014. 6. 12. 10:46


가끔 지하철에서 일본 책을 읽는 노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 분 일본에서 살다 오셨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분들 중 상당수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일본어가 국어(한국어)보다 더 편한 거다. 생각은 일본어(일본식)로 하고 말은 한국어(한국식)로 하는 거다. 그냥 그런 거다. 

그리고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거다. 그런데 아물지 않은 상처(혹은 흉터로 남은)를 자랑스레 미화시키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젊은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흉터는 자랑스런 자신의 일부이고 너희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식민지 세대라는 영광의 상처다. 이게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거다. 이번 총리 선임 건도 그런 역사의 일부이다. 식민사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그렇게 배웠던 시대가 있었고, 그 시대의 흉터가 이어져 온 것이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그 흉터를 보고, 그 흉터를 가진 사람들의 무용담에 현혹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투표한다. 그 뿐이다. 

그들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해 나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스스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옹호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일부를 보지 말고 전체를 봐야 하고, 어떤 역사 속에서 이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박정희를 한국의 대통령으로 알지, 일본어가 편했고 일본어로 사고했던 일본 장교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냥 그런 거다. 그리고 그냥 그랬으니, 그렇게 투표한 거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 내 허락하는 바, 그리고 독립한 한국 정부가 인정하는 가족 관계 증명서 내, 내가 속한 가족 구성원만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거꾸로 보면, 그렇게 일제 식민지 시대는 영속되는 거다. 식민지 시대 리더 계층은 아직도 리더 계층이다. 평범한 우리들이 리더가 되려면 기존 리더 계층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적대적인 관계 속에 리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더가 되면 어쩔 수 없이 표면적으로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된다. 그게 이 사회다. 

내가, 혹은 우리가 지지하는 어떤 리더가 맺은, 겉으로만 우호적인 관계를 보면서 평범한 우리들은 이 사회가 바뀌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리고 선량하고 정직한, 그러나 참 미련스러운 우리들의 상당수는 이 사회가 바뀌었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투표한 거다. 아직 우리들의 상당수는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들은 지금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거다. 

(이런 생각은 참 비관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이 사회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