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마틴 게이퍼드(지음)

지하련 2014. 6. 15. 22:10


다시, 그림이다 Conversation with David Hockney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가 지난 10년 간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와 나눈 대화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책 제목은 <A Bigger Message : Conversation with David Hockney by Martin Gayford>, 한국 번역서의 제목은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Mr and Mrs Clark and Percy

Acrylic on canvas, 1970-1971

305 cm × 213 cm, Acrylic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데이비드 호크니?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데이비드 호크니를 설명해야 하나? 먼저 그는 화가다. 생존해 있는 영국 최고의 화가이며, 평단, 예술가, 화상 등을 가리지 않고 최고로 인정하는 예술가다. 그는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이라는 책을 통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통해 그림을 정교하게 그린 화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후 몇몇 화가들이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던 방식을 대부분의 화가들이 이용하였음을 책을 통해 밝혔으며, 이 방식으로도 위대한 화가들을 따라잡지 못했음을 설득력 있게 기술하기도 했다(하지만, 논란거리만을 쫓는 평자들에겐 미술사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사진과 같은 원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베겼다는 데에만 집중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지기도 했다).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호크니저 | 남경태역 | 한길아트 | 2003.10.0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나에게는 2000년대 후반 갔던 파리 피악Fiac(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에서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단 한 점의 풍경화를 그렸던 예술가이기도 하다. 지극히 편파적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만 제대로 알아도 현대 미술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진, 영화, 무대 미술, 회화 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미술 용어들로 도배되고 제대로 된 분석 없이 양식만 훑는 미술 입문서나 전문 교양 서적을 읽는다. 한 때 지적 허영에 가득 차, 그런 책들을 읽으며 우쭐대기도 했지만(그런 책들로 인해 우리가 조금이나마 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현대 미술이란 지독하게 어려운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일상 생활에선 사용하지 않을 단어를 써가며 미술 작품을 논하는 모습은, 진정 위대한 작품을 모독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책, 이 대화집은 그런 전문 용어 따윈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원근법에 대한 기술은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린다는 것, 본다는 것에 대해 집중한다. 



내가 사람들을 차에 태워 여기로 올 때 길이 무슨 색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지요. 10분 후에 내가 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그들은 길의 색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길이 무슨 색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길의 색은 그저 길색일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84쪽) 





누군가는 이 책에 실린 호크니의 의견이 호크니만의 의견이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는 사진(카메라)은 기술일 뿐이고 작품으로서의 사진은 드로잉의 영역 속으로 들어와 있고, 영화는 드로잉에서 시작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사진을 거쳐 사진들의 연속물로서 미술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아이폰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포토샵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은 늘 자신을, 예술가를 흥분시킨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여깁니다. 나는 사진이 대부분 맞지만, 그것이 놓치고 있는 약간의 차이 때문에 사진이 세계로부터 크게 빗나간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내가 찾고 있었던 바입니다.(47쪽) 



드로잉과 흔적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는 것을 즐길 것입니다. 나는 기술에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것은 어떤 것이나 나의 흥미를 끕니다. 매체는 흔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98쪽) 




Place Furstenberg, Paris, August 7,8,9, 1985 #1

Photographic collage, 88.9 x 80 cm

Collection of the artist



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리느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결국 드로잉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제대로 된 드로잉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세히 끈질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 그렇죠. 그(반 고흐)가 그랬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맞습니다. 반 고흐는 많이 응시했을 겁니다. 틀림없이 아주 집중해서 보았을 겁니다. 사실 오랫동안 작업하면 눈이 아주 피곤해집니다. 그러면 그저 눈을 감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강렬한 응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185쪽) 



정말로 뛰어난 소묘화가에게는 공식이 없습니다. 각각의 이미지가 새롭습니다. 렘브란트와 프란시스코 고야, 피카소, 반 고흐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작품에서는 같은 얼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작품에는 항상 개개인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187쪽) 




A Bigger Splash

1967, Acrylic on canvas

243.8 x 243.8 cm

Tate Gallery, London



현대 미술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북유럽 예술가들의 한글 표기가 마음에 들지 않고(베르메르Vermeer를 페르메이르로 옮기고 있는 등 많은 이름이 다소 낯설게 - 영어 식인지 모르겠지만 - 옮겨졌다), 한 두 군데(내가 발견한) 오역이 보이지만, 이름과 작품 명 뒤에는 원문 표기가 되어 있고 문장은 쉽게 잘 읽히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용지의 선택이 무척 마음에 들고 인쇄 품질도 좋다. 도판은 작지만 꽤 선명하다. 


이번 여름,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면, 몰랐던, 혹은 알고 있다고 여겼던 미술을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저 | 주은정역 | 디자인하우스 | 2012.10.2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