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술, 그리고 인생

지하련 2014. 10. 23. 13:17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누군가가 나에게 술 마신 걸 마치 전쟁에서 겪은 전투이냥 이야기한다며 지적했다. 하긴 그랬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 

하지만 간이 좋지 않다는 건 가족을 제외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1주일에 한 두 번으로 술자리를 줄여도 힘든 경우가 많아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라, 마음이, 인생이, 사랑이 답답할 때면 술이 생각난다.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봐라봐도 좋다. 이쁘다. 영롱하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의 입술같다. 앞으로 사랑하게 될 그녀의 볼같다. 


어쩌면 지금은 읽지 않는, 과거의 흔적, 상처, 씁쓸한 향기같은 추억,처럼 밀려든다. 어떤 술은. 






세월은 참 빨리 흐르고, 술맛은 예전만 못하다. 마음따라 술맛도 변하고 사랑따라 술잔도 바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며 벗들과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거리기만 하다. 그렇게 술잔, 혹은 술 속으로 추억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텅 빈 잔을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다. 죽음과 가까워질 수록 내 눈도 침침해지고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사랑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는다. 열정은 굳고 몸은 느릿느릿 앉아 쉴 수 있는 공원 벤치를 찾는다. 그리고 예고 없이 겨울은 올 것이다. 


... 내가 기억하고 나를 기억해주던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