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떤 습작의 시작, 혹은 버려진 추억.

지하련 2014. 11. 13. 23:49


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마감이 힘이다. 마감이 있어야 하고 마감을 지켜야 하고 마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마감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끝나지 않는 마감이 있을 뿐. 


* *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황폐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 속을 걸어가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 후, 익숙함이라든가, 낯섦이라든가 하는 생의 사소함 따위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찻집 구석진 곳에서부터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때도 늦진 않았다. 만약 그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유리창 바깥만 바라보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밤이면 누군가를 품에 안고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창 밖을 바라본 것도 벌써 십칠 년이 흘렀다. 그 십칠 년 동안 내가 바라는 유일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제 밤, 술에 취한 한 여자가 이 테이블을 작은 두 손으로 내리쳤을 때, 그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되었음을, 골목길을 쓸쓸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자신의 쓸쓸함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 중년의 주름진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십칠 년 동안 눈동자 뒤편에서 깊은 희망의 수면(睡眠) 속에 있던 눈물들이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동안 난 차마 그 이름을 혓바닥 위에 올리지 못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된 이유는 나처럼 희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이루고 난 이후, 그 희망이 자신이 바라던 그 희망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그건 손바닥만한 무쇠덩어리에서 나간 손톱만한 고철덩어리가 한 영혼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건 한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지금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더 늦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 느닷없이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저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사라진다. 난 그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로 올렸고 얼마 뒤 그 소리는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 찬란한, 그러면서 너무 슬픈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따라가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기엔 내 인생이 불쌍했는지 난 이렇게 오래된 빈 노트 한 권을 꺼내 넋 나간 듯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과연 있을까.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빗물에 지워지고 바람에 묻어 날아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끝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흔적부터 처음 자위행위를 하고 난 다음 부드러운 표면의 성기에서 나온 정액의 흔적까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글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 몇 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지난 후 그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힐지도 모르며 이 속에 담긴 내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처럼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에 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분명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