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12월 23일 사무실 나가는 길, 나는.

지하련 2014. 12. 23. 10:47



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제 갈 길 가고 있다고 믿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울컥했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추위 속의 모녀는 움직였고 중년의 엄마의 흰 머리칼 사이로, 그녀가 손에 든 하얀 핸드폰 충전기가 눈에 띄었다. 충전기의 전선줄이 길게 늘어져, 걸음에 흔들거렸다. 흔들거리다 잠시 멈춰서고, ... ... 버스를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 그녀들은 버스 정류장 옆에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나라의 겨울은 참 오래 갈 것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겨울이 정치인들과 정부, 정부의 수반이 가지고 온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우리가 불러들인 것이다. 우리의 무관심, 냉대, 침묵이 불러들인 겨울이다.


그 겨울이 TV 속에 그 곳에서만 분다고 여기겠지만, 아마 조만간 우리 바로 옆으로 왔을 때 후회를 할 것이다. 늘 후회와 반성은 시간 늦게 도착하고, 우리가 건너려고 하던 저 다리가 부서지고 난 다음이다.


그런데 그 꼬마아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 꼬마아이가 자라나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많은 증오를 이 사회에 대해 가지게 될까, ... 도대체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