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벚꽃과 술

지하련 2015. 4. 13. 22:47


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그 때, 학교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질 때, 나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 봄 벚꽃과 내 사랑과는 그 어떤 연관도 맺지 못한다. 내 사랑은 계절을 벗어나 저 멀리, 외따로 있었다. 하지만 꽃은 쓸쓸하게 아름답고, 언제가 헤어지게 될 젊은 연인들은 부조리한 한 때의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벚꽃 아래로, 아래로 몰려들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갑작스레 밤이 오고 예상보다 빨리 아침이 왔다. 오는 밤과 오는 아침 사이에 나는 끼여,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도로는 축축했지만, 젖지 않았고 도시는 조용했지만 쉬지 않고 떠들었다. 대화는 없었고 일방적인 수다만 있었다. 나는 없고 너만 있는 봄이구나. 





퇴근을 하면 몸은 녹초가 된다. 녹초가 되는 만큼 마음은 투명해져, 어쩌지 못하는 밤이 된다. 시를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 결국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예전만큼 건강하지 못하고, ... 실은 한 번도 건강했던 적이 없었다. 병든 현대인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되었지만, 술은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술 친구들 마저. 




늦은 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하게 될 몇 권의 책을 빌렸다. 오늘, 저 벚꽃도 마지막이다. 내년 저 벚꽃을 볼 때면,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