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무지한 백성들의 나라

지하련 2015. 4. 25. 23:57

작년부터였나, 아니면 그 이전이었나.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마음 속의 분노와 절망은 너무 커져 폭발하기 직전이다. 오늘 광화문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는 듯 사는 내가 미워졌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젠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닌가 싶다. 조 단위로 해먹은 전직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지도 못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그간의 갈등을 끊고 악수하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은 없고 도리어 고산병을 극복하며 열정적으로 남미 외교를 하고 있다는 기사는, 대놓고 국민들을 무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고 한때 자신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정치인이었던 기업인이 억울해하며 자살을 해도, 그 지지는 쉽사리 누그러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기라도 한 걸까. 


* *  


세상사에 무지하고 관심 없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성군 따윈 없다. 아니 그런 성군이 있다 한들 그 성군 앞에 놓인 길은 가시밭길일 테니,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러니 백성들이 알아서 세상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무지한 백성들로 가득 차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라 믿고, 듣기 좋은 거짓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를 향한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고 잘못된 소문이 진짜인 양 그대로 따라 하기 일쑤다.


동네 곳곳에 도서관이 생기고 인터넷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백성들은 도리어 더 무지해지고 있다.


모든 시대, 모든 국가에서 벌어졌듯이, 그 나라 백성들 수준에 맞추어 그 나라 정치도 이루어지는 법이다. 전제군주정에는 그 정치체제에 맞는 백성들이 있고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에 맞는 백성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마치 전제군주정을 보는 듯하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황당해하고 일부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수수방관이다. 수수방관하면서 TV를 보며, 아무 일 없는 척한다. 당연히 그들이 보는 TV 채널은 고정되어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내일이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못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퇴보 중이다. 더 큰 문제는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관심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안다고 해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문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만큼 체계적으로 변했다. 1970년대가 아니라 2010년대다. 연일 국가부채, 가계부채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부는 어떻게든 돈을 빌려가서라도 경기 부양을 할 태세다. 의도적으로라도 자산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싶을 게다. 집값 오르면 부자가 된 양, 돈을 많이 쓰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고 왜 세상이 갈수록 야박해지고 일상이 힘들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이젠 던지지도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우리는 세상사의 무지함으로 인한 반쯤 노예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노예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무관하게 언젠간 배탈 나게 할 음식을 내어놓으면 좋아라 하고, 배탈나지 않는 법 같은 걸 이야기하면 화를 내고 ‘너 이상한 생각을 하는 놈이구나’라며 인신공격을 해댄다. 

 

이제 우리의 적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 속의 무지다. 스스로 무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채널이 고정된 TV를 보면서 세상을 잘못 읽고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 무지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이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흥분하고 열을 내지만, 미래는 정해져 있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사라졌다. 


왜 사라졌냐고? 그건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할 눈도, 안목도 가지지 못한 우리들 탓이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폐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