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한스 위르겐 괴르츠

지하련 2016. 11. 20. 20:24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한스 위르겐 괴르츠(Hans-Jurgen Goertz) 지음, 최대희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3 



사실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반드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며,
사실이란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미술과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긴 했지만, 제대로 배웠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술사든, 예술사든, 그것은 역사학의 한 분과 학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과 역사학 자체에 대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역사학, 또는 역사이론에 지식이 없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감동적인가'라고 묻곤 한다. 왜냐면 그 작품의 명성과 감동, 혹은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공감한다는 건 전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게 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런 다음 반 고흐의 <해바라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어떤가라고 묻는다. 감동적인가,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는 어떤가 하고. 실은 반 고흐의 아무 작품이나 상관없다. 어떻게 하든 확실하게 다 빈치의 <모나리자>보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아니 그의 다른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훨씬 감동적일 테니 말이다. 


그리곤 옛날 작품을 보고 감상하기 위해선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 고흐는 이런 측면에서 아직 현대적이며, 우리 시대는 반 고흐의 시대에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감적 이해'란 무얼까? 나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이 슐라이어마허가 말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역사를 공부하긴 했으나,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 사료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 등등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다. 


Sunflowers, repetition of the 4th version (yellow background), August 1889.

Van Gogh Museum, Amsterdam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우리는 문법적 방법과 심리적 방법의 도움을 받아 이해에 도달한다. (...) 심리적 방법이란 이해하는 사람이 이해의 대상인 사고나 산물을 창출해낸 사람의 입장에 서 보고, 스스로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에 대한 파악, 다시 말하면 타인이 그 자신의 사고, 행동, 그 자신에 대해 부여한 의미를 직관, 예감, 추측을 기반으로 파악하는 것이 이해하는 행위의 본래적 의미를 구성한다. 이를 의미에 대한 공감적(sympathetisch) 이해하고 일컫는다. 

- 203쪽 


내가 한창 공부하던 시설, 예술사 선생님께서 '공감적 이해'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셨는데, 굳이 해석학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으셨거나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선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역사학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건 사실이니. 


이 책은 역사(책)을 이해하고 이를 글로 풀어내며 당대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여러 학자들의 이론들을 소개하고 정리한다. 그러면서 역사란 '대상없는 과학'이며 그래서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해석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야기식 서술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이야기식 서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역사책의 한계를 드러낸다. 


"역사가 대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싱 대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 즉 문제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만이 역사가의 연구 작업에 방향과 의미를 부여하며 현실과 완성을 제공한다. "

- 포슬러 Otto Vossler, <<의미로서의 역사>> (170쪽에서 재인용) 


이야기식 서술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책들 대부분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율을 따른다(따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폴 발레리(Paul Valery)의 "아무런 내용도 없고 쓸모도 없는 개념인 '원인'은 성공적인 서술을 망쳐놓는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역사학에서의 인과율이 가지는 위험성을 말하기도 한다. 왜냐면 하나의 사건은 원인이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예 역사는 일종의 예술이며 문학작품이라는 견해를 인용하기도 한다. 역사 서술은 객관성이 아니라 당파성을 가져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의견을 소개하기도 하고. 아마 역사학이 어떤 것인가 알기 위해 이 책만큼 좋은 책도 없을 듯 싶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역사적 사고의 기원

역사 속의 이성 - 계몽주의

이성 속의 역사 - 역사주의 

역사의 '형태변화' 

계몽주의와 역사주의를 넘어서

대상 없는 과학

사실과 허구 

역사적 해석학

원인과 결과 

객관성과 당파성 

언어, 이야기식 서술, 메타포, 개념

역사적 시간의 문제 


내가 역사에 대해 공부한 것이 뤼시엥 페브르나 페르낭 브로델의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 진 것인지 몰라도, 역사에 대한 이해나 고찰에 대해선 페르낭 브로델의 <<필리프 2세 시대의 지중해 연안세계>>(1946)의 인용문이 가장 와 닿았다. 적어도 우리들의 일상은 조각나고 파편화되고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길게 보면 하나의 흐름으로 묶을 수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격심한 열정으로 가득 찬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같은 모든 생동하는 세계처럼 확신에 차 있으며 맹목적이며 역사적 심연에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세계는 우리가 타고 있는 보트 저 깊숙한 아래에서 도도히 흐르는 물결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거대한 아무 소리없이 흐르는 물결의 깊이를 알 수 있게 된 이래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물결의 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오로지 긴 시간대를 고찰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시끌벅적한 사건들도 흔히 순간적인 것, 거대한 운명의 밖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며, 결국 이러한 운명에 의해서만 설명 가능하다." 

- 페르낭 브로델, <<필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325쪽에서 재인용) 


한동안 나는 왜 사람들이 형편없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봐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가 씌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했는지, 황당하지만, 그것은 서구 학계에서 말하는 바 정치의 서비스화, 고객중심주의, 탈물질주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이를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이 때 아날학파의 시각을 받아들이면 흥미롭게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아직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의 의식, 태도는 후기 조선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자, 너무 많은 것들이 이해되고 공감되었다. 장기지속이란 이런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따로 공부해서 한 번 적어볼까 하는데, 잘 될 진 모르겠다. 주말마다 촛불 들고 나가야 되고, 돈벌이도 팍팍하고 힘든 요즘에, 여유롭게 글 쓸 생각이라니 말이다. 


이 책, <<역사학이란 무엇인가>>는 역사책 읽기를 즐기거나 역사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하게 추천한다. 그만큼 좋은 책이다. 

다시 출간되기를 희망해본다. 




독일 원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