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마키아벨리

지하련 2004. 8. 21. 11:07
 

퀜틴 스키너(지음), 신현승(옮김), <마키아벨리>, 시공사, 2001
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옮김), <군주론>, 까치, 1994(1판), 2000(9쇄)


최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가 19세기의 유산임을 알았다. 그간 공부를 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 매우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9세기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문예 부흥의 시기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은 다분히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지기도, 높게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는 공공연하게 '비열한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퀜틴 스키너는 여기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450여 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교활함과 이중성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한 오도된 신봉의 전형으로 지금껏 생존해 있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소위 '잔인한 마키아벨리'는 각 종파의 도덕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및 혁명론자들의 눈에 줄곧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비쳐졌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환경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어떤 점에서 틀리며 <군주론> 이후의 저작들을 통해 그가 '고전적 공화주의자'로서 자신의 사상을 어떻게 피력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의 문제성 보다는 그의 사상이 가지는 고전적 인문론자로서의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이는 정치학 연구자로서의 입장일 뿐, 다른 맥락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가지는 중요성은 그의 정치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가 16세기의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는 '심리학적 폭로주의'의 입장에 서있으며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묘한 심리 상태를 유발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크레인 브린튼 같은 학자는 '마키아벨리는 전도된 이상주의자요, 그 자신 과도한 완전성을 원했기 때문에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문제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연구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과거의 인물들로서는 거의 해결 불가능한 과제이다. 마키아벨리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식인'(<서양사상의 역사>, 371쪽, 을유문화사)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퀜틴 스키너의 책보다는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를 읽는 것이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데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분히 예술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로선 마키아벨리는 전형적인 매너리즘 사상가 이며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속에서 분열적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저자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서술된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크레인 브린턴의 책이나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소외>(종로서적, 절판)이 좋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이 두 권의 책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반도는 유럽의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지리상의 발견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등장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과 세속 권력과의 대결은 종교 개혁이라는 가면을 쓰고 한 바탕 전쟁을 벌인다. 이 때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느꼈던 감정이란 인간이란 거짓말하기를 일삼고 폭력적이며 하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자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며 자신의 이상은 지켜야만 하는 분열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현실 정치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래서 스키너와 같은 현대의 정치학 연구자들은 그를 고전적 공화주의자로 평가하고 싶어하지만, 그 평가는 도리어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왜냐면 마키아벨리는 그리스나 로마의 학자들이 주장했던 견해와는 다른 의견을 밝히고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케로의 '덕(virtu')'와 마키아벨리의 '덕'은 틀린 개념이 된다.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같은 분열적이며 자기 기만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네가 하면 살인이지만, 내가 하면 군주가 되기 위한 뛰어난 전술이 되는 것이다.



군주론 - 10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까치글방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 - 10점
퀜틴 스키너 지음, 강정인.김현아 옮김/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