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박물관의 탄생, 전진성

지하련 2004. 9. 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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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성(지음),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초판


알튀세르가 강압적 국가 기구(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es)를 이야기했을 때, 그는 우리의 삶 전체가 정치적인 기구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 전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알튀세르에게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가족, 학교, 미디어 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어쩌면 군대, 경찰 제도보다도 더 위험한 기구들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 알튀세르의 기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아미앵에서의 주장'(솔출판사, 현재 절판)에서 여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전진성의 <박물관의 탄생>은 짧지만, 박물관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연대기적으로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museum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되는 mouseion(뮤제이온)은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에 알렉산드리아에 건설된 왕립 연구소였다.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선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거머쥔 귀족이나 상인 가문들의 여러 진기한 물건들이 모인 방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galleria는 메디치 가문이 소장한 물건들을 진열했던 ‘ㄷ’자 모양의 회랑을 뜻하는 단어로 현재의 Gallery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한다. 세계 각지의 여러 진기한 물건들을 모아두었던 방은 르네상스 시대에 진행되는 문명의 부흥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세속 권력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이용되었다.

독일어 Wunderkammer(분더캄머)는 ‘경이로운 방’으로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모아두던 방이었다. 이 때가 16세기임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기운이 전유럽으로 확대되던 시기였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18세기 혁명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19세기 제국주의의 상징물이다. 전진성은 ‘박물관은 근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 특히 혁명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대응책이라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다. 혁명을 통해 등장한 이 근대적 기관은 우선 ‘국민’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었고 그 기저에는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주체’라는 세속적이고 능동적인 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물관은 ‘역사의 이성’을 입증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박물관은 혁명이 몰고 온 거센 풍파 속에서 과거가 머무는 안식처였다’(pp.76-77)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진성의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 박물관이 정치적인 기구로 기능해왔다는 점만 말할 뿐이다. 그 다음의 주장은 이 책에 담겨있지 않다. 박물관의 탄생과 변천에 대한 정리는 잘 되어있지만,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고자 하여 박물관이 지닌 가치나 효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현대의 박물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김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현재의 시점에서 박물관의 의미, 필요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로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 대해 알고 싶은 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지만,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훨씬 좋은 책이다(실은 살림 시리즈 중에서 몇 권 되지 않은 좋은 책 중의 한 권이다).


박물관의 탄생 - 087

전진성저 | 살림 | 2004.05.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last updated: 200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