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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유혹에 대하여 De la se'duction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1. 


철 지난 책을 읽었다. 작년에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읽다보면 반-페미니즘처럼 읽히기도 하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찝찝하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공격할 만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보드리야르는 여성의 유혹, 쾌락 등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유혹'의 관점에서 유혹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상징적 차원, 이론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그래서 일종의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말장난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를 분석하는 챕터에선 절정에 이른다고 할까. 


보드리야르는 서문에서 대 놓고 유혹이 얼마나 당해왔는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유혹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임을 숨기지 않는다. 


지울 수 없는 어떤 운명이 유혹을 짓누른다.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유혹은, 그것이 교묘한 것이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든, 악마의 전략이었다. 유혹은 늘 악의 유혹이다. 아니 사람들의 유혹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기교(artifice)인 것이다. 유혹에 대한 이러한 저주는 도덕과 철학을 통해서도, 오늘날의 정신분석과 '욕망의 해방'을 통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 악, 퇴폐가 지니는 가치들이 격상되었기 때문에, 저주받았던 모든 것이 오늘날에 와서 종종 예정된 자신의 부활을 반기고 있기 때문에, 유혹이 저주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 그렇다 해도 유혹으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서문 



책 자체가 유혹적이고 자극적이고 은밀스럽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유혹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장들도 꽤나 은유적이면서도 직접적이서,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좀 덜하긴 하지만)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단어나 문장에 너무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 독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에 어렵고 다 읽고 난 다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는 건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책 읽기를 권하는데, 과거의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여러 가지 모색을 계속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염세주의적이고 절망적이긴 하나, 그 시선 자체로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일종의 묵시록적 예언가처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을 주장했고,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앵무새 인문학자들은 '시뮬라시옹'만 따라 외쳤으니. 



2. 


한 때 장 보드리야르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신 아감벤(아니 이 어려운 학자가!)이 유행이다. 인문학이 유행을 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은 더 개판이 되고 있는데,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할 실천적 이론들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유행을 탄다. 


가끔 불평을 하는 것 중 노선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폴 드 만을 찬양하다가 알튀세르를 지지하면서 소개하거나 새롭게 번역된 마르크스의 저술들을 소개한다. 즉 인문학의 유행을 따라다니는 건 뭐라고 할 생각이 없으나, 분명한 가치 판단은 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절대 만날 수도 없는 학자들을 똑같이 지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인문학을 바라보아야 한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도,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도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발을 땅에 딛고 손은 언제나 일을 하면서, 인문학도 똑같이 그런 우리 삶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그것 - 우리 삶 - 이 상징적 차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반어적 의미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였는데, 한국의 앵무새 인문학자들은 탈정치화된 유토피아를 그대로 이야기했다. 도리어 미국의 감독이 시뮬라시옹이 구현된 디스토피아를 영화로 제작하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3. 


보드리야르의 이 책도 품절이다. 다시 출간될 일은 요원해보이니,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를 권한다.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몇몇 문장들은 무척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아마 이 정도만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유혹에 대하여 - 10점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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