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지하련 2006. 3. 6. 01:01
오정희(지음), <<내 마음의 무늬>>, 황금부엉이, 초판3쇄



산문집을 출판한 뒤, 보름 만에 3쇄를 찍은 이 산문집을 보면서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게 꼭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도리어 읽을 책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신뢰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휙 돌고 나오고 나온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 생각부터 오정희가 가지는 개인브랜드까지.

얼마 전 어느 신문 기사에 한국 문단은 정부가 먹여 살린다는 짤막한 시평이 실렸다. 소설 써서 정부 지원금 받고 재단 지원금 받고 하면 연봉이 한 이 천 만원 정도 된다는 웃지 못할 글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 진짜 밥벌이용 소설인 셈이다. 소설가는 소설을 출판해 독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 신청에 사용하고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책을 고르기도,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안목도 없고.

그러니 광고나 대문장만한 리뷰를 보고 책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정희의 산문집 서평 서두부터 시답잖은 문장으로 시작한 것이 그리 유쾌하진 못하겠지만, 나로선 오정희의 산문집이 나오고 난 뒤, 여기저기에서 들려준 격찬은 다소 어색하고 조금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이 산문집의 시작은 ‘무척’ 좋다. 꼭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긴장감은 떨어지고 한 권의 책으로 엮기 위해 억지로 붙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편집자의 몇 마디 글은 ‘나는 오정희의 열성팬이예요’라고 광고하는 듯 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 이렇게 글 쓰는 사람이 없나 하는.

그리고 이 생각은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기싱의 고백>>(효형출판)을 떠올리면서 더 심해졌다. 무릇 산문집이라면 조지 기싱의 책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미셸 투르니에나.

오정희의 산문집도 꽤 좋은 책이다. 무리 없이 읽히고 간간히 그녀만이 우리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문장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수준의 산문집이며 도리어 오정희라는 이름과 견준다면 다소 실망스러운 산문집이다.

혹시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내 마음의 무늬 - 6점
오정희 지음/황금부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