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조세미

지하련 2006. 4. 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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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미(지음), <<세계는 지금 이런 인재를 원한다>>, 해냄, 2005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모험을 꿈꾸는 것만큼 비난받을 행위도 없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빈번한 모험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참 운이 좋다는 생각까지 든다. 모 대학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내가 해온 일을 보면 이와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 미술사의 세계에 빠졌지만 뜻하지 않게 대학원 진학에 실패했고 빈번히 회사를 옮겨 다녔다. 사업을 하겠다고 하다 실패했으며 마음의 상처도 심하게 입었다.

조세미의 이 책은 대기업이나 금융권, 경영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거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대다수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실업자, 무직자인 우리들 대다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일 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시대가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우리 마음 속의 로컬리즘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어학 연수를 다녀오지만, 한국인으로 갔다가 한국인으로 돌아온다. 토익 900점이 넘어도 서점에 가서 ‘비즈니스 워크’나 ‘포보스’같은 영문 잡지를 사서 읽지 않는다. 직급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며 만만한 사람들에게는 큰 목소리를 내다가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려 버린다. 모든 이들이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심지어 대기업에 다니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이제 모든 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우리 사회 자체가 나약했으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기보다 눈앞의 안정을 바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안정이 얼마나 지탱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험의 시대가 행복했던 적은 매우 드물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에서 그가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희구를 드러낼 때의 심정도 이러했으리라. 그러니 내가 타인에게 모험을 권하는 것에는 매우 모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모험하지 않았다면 나는 꽤 괜찮은(2006년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뜻하는 바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시선을 온라인 상에서 공공연히 드러내며 삶의 비관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험을 권하다니.

내가 제일 싫어했던 TV프로그램은 ‘성공시대’이다. 그 프로그램에선 1명의 성공인만 다룰 뿐 그러한 성공을 꿈꾸며 도전했던 99명의 실패인들의 삶에 대해선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다. 99명 이상이 실패했다는 것을.

이 책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기도 하지만, 우리들 대다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책은 권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안정을 희구하는 시대에 모험을 강요하고 모험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