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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지음), 열린책들
우리 시대는 근대 개인주의의 어떤 극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소설가가 바로 폴 오스터이다. 그는 어떤 인도주의나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지 않고, 아니 그런 것들에 심한 경멸감을 내비치면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한 순간도 냉정을 잃지 않으며 감정의 쓰잘데기 없는 부분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차가우며 어떤 점에선 매우 매력적이고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이것은 과연 미덕인가, 악덕인가.
<빵 굽는 타자기>는 폴 오스터의 자서전 비슷한 것이지만, 꼭 자서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누가 알겠는가. 허구일지. 따지고 보면 진실에 기반한 자서전이란 없는 셈이다. '진실'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빵 굽는 타자기> 속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글을 어떻게 쓰고 어떤 고민을 하는가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문장이나 혹은 세계관 따위,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그런 것들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오는 것은 작중 화자인 '나'가 겪는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인물들과 사건들은 어떤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나의 시선에 의해 걸러지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즉 독자는 작가가 던져주는 평가에 만족해야 한다. 매우 권위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진다면 이 책은 아마 쓰레기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악덕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문제는 우리 시대가 폴 오스터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시대. 그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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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나오는 희곡 세 편은 읽지 않았다. <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정전>, <숨바꼭질>. 재미있어 보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