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일요일

지하련 2006. 5. 22. 11:29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다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서울 시립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전을 보았다. 한불수교120주년 기념 전시다. 그래서 피카소 작품들이 들어왔다. ‘솔레르씨 가족’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전율 같은 게 일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정도의 전율을 일으키는 작품은 없었다. 대신 내 눈에 띄는 건 온통 연애 하러 나온 남녀만 눈에 띌 뿐이었다. 어쩌다가 미술관이 연애의 공간으로 변한 것일까. 하긴 연애라면 남부럽지 않았던 피카소 탓일 지도 모르겠다. 혼자 미술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후기작들은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이들이 매체 미술과 미니멀한 경향으로 내닫고 있을 때, 피카소는 여전히 입체파적인 경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피카소보다 마티스가 난 좋다. 마티스의 색채와 운동감은 늘 언제나 날 자극시킨다.

교보문고에 가서 시디‘들’을 샀다. 존 케이지부터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까지. 지금은 오늘 같이 산 ‘첼리비다케가 지휘하고 런던 필이 연주한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5번’을 듣고 있다. 대단히 밀도감 있는 연주다.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의 음반은 거의 없다고 한다. 거의 없는 와중에 이 음반이 있다. 그는 칼 뵘을 ‘감자포대’라고 평했는데, 무척 마음에 든다.

칼 뵘이 지휘한 모차르트 레퀴엠 음반이 있는데, 거의 듣지 않는다. 최근에 구입한 헤레베레(Philippe Herreweghe)의 레퀴엠이 휠씬 낫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이스트반 케르테즈(Istvan Kertesz)가 지휘하고 빈 필이 연주한 모차르트 레퀴엠이 최고다. 1966년 런던의 데카에서 LP로 찍어낸 원판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이 앨범은 내 방 오디오로 소화가 불가능한 음반이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앨범인데, 이 앨범을 건네면서 친구가 말하길 매니아들 사이에선 백 만원을 넘기는 앨범이라고 했다. 그런데 모차르트 레퀴엠 시디를 여러 장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레퀴엠을 듣는 순간, 그 전의 모든 해석들이 다 사라지고 이 음악 소리만 들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전율적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나 싶어 시디로 복각되었나 보았더니, 인정 보지 않고 LP로만 몇 년 전에 몇 장 찍어내고 다시 사라져버렸다.

올해 모차르트 레퀴엠을 한국의 어느 교향악단이 연주한다고 했는데, 챙겨놓아야겠다.

누가 존 케이지 음반을 살까 했더니만, 나 같은 이가 산다는 걸 알았다. 존 케이지 음반들은 온통 독일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현대 음악과 독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 듯하다.


ECM에서 나온 존 케이지. 2000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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