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밤 11시 합정역 사거리 건널목

지하련 2006. 7. 31. 09:46
지난 봄, 쓸쓸한 서울 거리의 먼지들을 가득 머금은 검은 빛깔의 옷을 입은 그가 조심스럽게 딛는 발자국 흔.적.에서 낮고 기인 향기가 부서져, 수증기같이 뿌연 장마비가 내리는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러자 창백한 혀를 내밀려 그에게 당당하게도! 키스를 요구하다 거절.당.한 그녀가 발아간 손을 내밀어 그의 거친 볼을, 그의 울퉁불퉁한 이마를, 그의 흥분한 눈썹을, 아무 말 없는 그의 눈동자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 때 합정역 사거리, 아주 오래 전부터 지쳐있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지하철 2호선으로 하얀 빛깔의 건널목 위로 들어왔다. 밤11시. 2호선 합정역 건널목. 그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가고 그 곳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맹렬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은 당산역을 향해 떠났다. 지하철이 당산역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암 슬펐다. 건널목 앞에서 서서 파란 불과 빨간 불 사이를 오가며 내 청춘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떠나간 그의 우수와 다시는 오지 않을 그녀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