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하련 2001. 9. 22. 22:17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1



'다치바나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그리고 책 표지 뒷면에는 '지의 거인'이라는 단어가 다치바나라는 이름 앞에 붙어 있다. 이런 식의 거창한 단어들이 쓰인 책일수록, 대체로 무책임하면서 저급한 경우가 많다. 이 책? '무책임'이나 '저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별 내용 없는 책이라는 점에서 여러 다른 책들과 엇비슷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데에는 많은 목적이 있다. 다치바나처럼 지적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학문적 목적 때문일 수도 있으며 궁지에 몰린 인생에 해답을 찾기 위한 절대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만으로 책을 읽는다면 그 한계는 명확하다. 왜냐면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지식들은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뉴튼의 물리학이 어떤 지적 호기심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뉴튼의 물리학은 이후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 것보다 인류의 삶은 변화시킨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지식이란 이런 것이고 책이란 이런 지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둘러싸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런 류의 일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다치바나의, 이 책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를 이야기할 뿐, 그 외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많은 책을 읽고도 참된 지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한 마디도 적어내지 못한다면 그 많은 책들은 쓰레기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한 권의 책만을 읽고 이 세상의 진리를 깨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 만 권의 책을 읽고도 이런 책을 읽었다고 말할 뿐, 그 책들이 자기에 무엇을 주었는가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내가 보기엔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훌륭한 책을 깊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6점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청어람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