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마르크스의 유령, 자끄 데리다

지하련 2004. 2. 14. 09:10

마르크스의 유령들 Spectres de Marx
Jacques Derrida 지음, 양운덕 옭김, 한뜻, 1996



이 책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나의 앎이 부족한 탓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데리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그 두 번째는 데리다의 문장에 있다. 철학을 문학으로 여기는 그의 문장은 난해하다기 보다는 '문학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그런데 이 책의 역자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마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는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책이 아니라 데리다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역사의 종말>>이라는 후쿠야마의 책으로 세계는 떠들썩 했다. 이 책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말론이다. 즉 자본주의가 승리하였고 이제 새로운 세계질서가 펼쳐진다는, 헤겔-코제브적 목적론을 그대로 자본주의 세계로 옮겨와 주절거린 책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미국 지식인들은 열광하였고 여러 기업경영인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역사의 종말>>에 대한 반격처럼 씌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쿠야마의 책에 대한 공격이 이 책에 실려져 있다. 하지만 그 공격은 무척 허약해 보인다. 그 공격의 논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공격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가에 있다.

후쿠야마의 논리는 탄탄한 목적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데리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모든 목적론적 세계관을 공격하였고 20세기 자유주의자들의 교과서처럼 되었는데, 신자유주의자들에게서 다시 목적론적 세계관이 도래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더구나 이 목적론적 세계관은 이전보다 더 단단해 보인다. 왜냐면 20세기의 반목적론적 세계관까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이 책은 그의 철학적 작업들(해체)의 일환으로 이해되지, 마르크스주의자의 책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이지 않은 어떤 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일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형이상학적(추상적)이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의도했던 바 실체적이고 유물론적 세계관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래서 현실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기 바쁜 현대인에게 아무런 호소력도 가지지 못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왜 이 정도로밖에 번역하지 못했을까. 궁금하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