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하련 2006. 10. 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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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산문집, 이레


열어놓은 창으로 차가운 새벽 공기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초가을 모기까지 들어와 날 괴롭힌다. 제 철이라 핀 코스모스는 바람의 상쾌한 노래 소리에 몸을 흔들지만, 그걸 곱게 봐 줄 사람 없는 도로 한 복판에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기에게 물린 발등의 자국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모기 소리는 계속 내 귓가를 맴돌며 흘러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은 가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것도 오염된 가을이.

오염된 몇 번의 가을을 거치자, 나도 오염되었다. 이제 매우 불순한 상태로 오염된 내가 몇 달 동안 읽은 함민복 산문집. 처음은 좋았으나, 중간은 피곤했으며 끝은 알 턱 없이 슬펐다. 나는 함민복 씨를 만나본 적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의 첫 번째 시집에 서가 구석에 있기는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시집에서 그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주 오래 전에 그가 강화도 어느 폐가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는 말을 풍문으로 전해 들었을 때, 시인으로 살기 어려운 시절에, 시인으로 살아가는 드문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의 산문은 때로 아름답고 때로 진실했으며 때로 슬펐지만, 그 뿐이다. 내 감성은 악착같이 그의 언어에 동화되길 거부했으며 거부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젓이 살아남아야만 하는 나로선 그의 언어는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이제 조용히 서가로 꽂히게 될 이 책은 그 숨결을 숨기고 잠잠해질 것이다. 기억은 영원하지 않고 그것보다 더 내 삶은 짧을 것이므로.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영향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면으로 덧씌워진 내 삶의 자유는 언제까지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