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비평

영화 스토리의 성공 요소

지하련 2007. 2. 4. 13:01
두 편의 영화를 노트북으로 보았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극장에도 거의 가지 않는 내가 영화를 보는 채널은 온라인이다. ‘에라곤’과 ‘우주전쟁’ 내가 본 두 편의 영화다. 이 두 편은 영화의 완성도에서나 극적 요소의 사용, 스토리의 박진감 등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라곤’은 형편없는 영화이며, ‘우주전쟁’은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아주 가끔 영화를 보면서 왜 감독이나 시나리오작가들은 스토리를 왜 이렇게 구성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하면서 자신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화시키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에라곤’과 ‘우주전쟁’을 보고 난 뒤, 나는 그들을 위해 상식적이며 기본 사항에 해당되는 몇 가지 사실을 적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는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1. 관객에게 대사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지 마라.
- ‘에라곤’은 대사를 통해 상황을 너무 자주 설명한다. 영화는 소설이나 희곡이 아니다. 왜 카메라로 찍어서 스크린으로 왜 보여주는가? 관객에게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사 없이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우주전쟁’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 일행이 있었던 집 위로 여객기가 추락한 장면에서. 이런 장면은 관객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이런 설명을 굳이 사용하고 싶다면, 그것은 다음에 일어나 거대한 사건의 암시가 되어야할 것이며 관객이 다음 사건을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보여만 줘라. 관객은 바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일일이 대사로 설명받기 원할 정도로 적극적이지도 않다.

2. 속도감
- 매 시퀀스마다 사건이 있어야 한다. 잠시라도 쉬면 안 된다. 1시간 반, 2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주인공이 걸어가는 장면도 최소화해야 된다. 그런 장면들은 낭비다. 걷는 영화는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트’가 유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걷는다’는 행위는 예술적 통찰을 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걷는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영화 상영 시간은 언제나 짧다.

3. 명확한 주제의식, 또는 목적의식
-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관객에게 심어줄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에라곤’은 관객에게 무엇을 심어주려고 한 것일까? 사랑? 우정? 관객은 난폭하게 생긴 서양의 용이 여성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에 경악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우주전쟁’에서는 명확하다. 영화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가령 ‘반지의 제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몸집이 제일 작고 싸움도 제일 못하는 호빗족이 세계를 구한다는 것. 이는 외형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들어나지 않은 마음가짐, 신념, 정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종종 심리극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4. 주인공의 변화
- 극 초반의 주인공(또는 인물들 간의 관계)과 극 후반의 주인공과는 다른 사람이어야 한다.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어떤 상황이 변한다는 것을 뜻하며, 이를 통해 주인공은 변해야만 한다. 그것이 성장이든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종 일관 동일한 컨셉을 유지하는 주인공도 있다. 가령 ‘다이하드’에서의 존 맥크레인같은 인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바뀐다. 인물이 변하든지 관계가 변하든지, 무조건 변해야만 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영화의 주제나 목적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