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하련 2007. 2. 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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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지음), 김정숙(옮김), 문학동네


낯설고 기괴한 아포리즘. 에밀 시오랑, 그는 언제나 타인이며, 외부자요, 끊임없이 독자에게 절망을 강요하며, 저주와 독설로 이 세상을 매도하기에 여념 없다. 평생 독신으로, 끝내 이방인으로밖에 머물 수 없었던 파리에서, 이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노작가는 쓸쓸하게 죽게 될 1995년까지 그는 펜을 놓지 않으며, 세상을 저주하기에 여념 없다. 그래서 그에게 무엇을 남게 될 것이며, 그를 읽은 독자는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에밀 시오랑. 그의 책 몇 권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그를 아는 이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만큼 그의 세계는 (다행스럽게도) 대중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얼마간의 안도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기껏해야 나 같은 작자에게나 읽히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긴 봄 같은 겨울이 지나고 여름 같은 봄이 올 것이며 열대 같은 여름 속에서 모든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삶을 저주하며, 그들의 사랑을 파탄으로 내몰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상태가 올 지도 모르니, 아직 인류에게 미래는 남아있는 것일 지도.

정말로, 진실로, 거짓 없이 불행하다는 것. 절망적이라는 것. 참담하고 비극적이라는 것. 원래부터 그래왔으며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 그런 이유로 우리 심장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시도 쉬지 않고 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생명은 우리의 저주받는 생애 내내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불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우리의 진짜 모습을 숨기기 위해 축조된 ‘거짓말’.

에밀 시오랑을 읽기 위해선 적당한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적당한 알코올과 적절한 패배감과 눈부신 오후의 햇살.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선 딴 남자를 만나 덜컥 결혼해버린 여인의 뒷모습.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준비한 자해, 공갈, 협박의 도구로서의 과도(果刀).

적절한 주위 환경 조성으로 에밀 시오랑은 극적인 엑스타시를 독자에게 선물해줄 것이다. 진정한 독서란 적절한 주위 환경 조성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