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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 2004년 을 내기 전 정리한 노트입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이 때 이후 열심히 공부하질 못했네요.


자본주의의 시대

예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데, 뜬금없이 '자본주의의 시대'라는 소제목이 의아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시대'라는 문구만큼 적절한 것을 찾지 못했다. 19세기 초 낭만주의자들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멀리 도망치길 원했다면, 그래서 어떤 환상이나 몽상적 세계를 꿈꾸었다면, 19세기 중반의 낭만주의자들은 현실과 싸워 세계의 진보를 이루려고 했다. 이것이 발자크의 세계관이다. 다시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믿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의 물결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던 시기의 부르주아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해 19세기 중반 이후 농촌에서의 삶이란 불가능했고 모두 도시로 나오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변해갔으며 이 때 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세계의 격변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예술은 도리어 퇴폐적이며 시대착오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 양식인 라파엘 전파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화가들은 이러한 시대착오적 예술 양식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고 있다. 도시가 삶의 중심이 되고 계급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혁명의 어두운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낭만주의 양식과 아카데미 미술은 적절하게 19세기 중반 이후의 유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쿠르베의 작품은 당시 미술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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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urial at Ornans
Gustave Courbet
1849-50; Oil on canvas, 314 x 663 cm (10" 3 1/2" x 21' 9"); Musee d'Orsay, Paris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라는 쿠르베의 말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그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카라바지오가 보여주었던 바의 그 바로크적 자연주의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사실주의(realism)'-다소 그 정의가 애매한-이라고 적었다. '오를레앙의 장례'는 쿠르베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림은 다소 어둡고 분위기는 침울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태도'는 당시 유럽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 세계는 낭만주의적 색채를 잃어버리고 우리가 살고 있던 현대적 감수성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것의 귀결이 허무주의이더라도 그것이 등장했을 19세기 중반에는 하나의 혁명이었고 진보였다.


허위와의 전쟁

우리는 진실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을까? 글쎄, 나는 여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모든 진실은 자기자신의 변명이나 합리화를 위해서 존재할 뿐, 실제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는 아무런 관심에도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중후반 대도시에 살아가던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 '진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윌리엄 부게로 같은 아카데미 미술가들이나 라파엘 전파 같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진실을 위해 자신들의 노력을 바쳤다. 그들에게는 칼 마르크스나 찰스 다윈이 이야기한 세계 인식의 극적인 변화를 인식할 여유도 인식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종종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큰 변혁기에 놓여있지 않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20세기, 21세기는 19세기의 연속일 뿐이다. 19세기적 삶의 방식이 그대로 21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아직까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계급갈등이 유효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직까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교과서에 싣는 문제를 가지고 종교계가 반발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19세기 이 두 명의 학자가 말한 바 진실이 당시 사회의 근간부터 흔들어놓았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물질적 기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우리의 의식은 계급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구분이 뚜렷해지고 계급적 자각이 시작된다. 하지만 동시에 '물질적 기반에서 그 어느 것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의 유물론적 태도는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태도는 자신들의 계급적 한계를 뚜렷하게 성찰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허위 의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찰스 다윈은 마르크스의 영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생각,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한 강한 종만이 진화하여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은 모든 이론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진화의 개념은 근대 기계론과 합쳐져 '진화론적 진보주의'로 변화한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부터 그 힘을 뚜렷하게 잃어가던 기독교의 세계를 일거에 날려버린다. 즉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찰스 다윈의 세계는 진보적인 지식인의 세계이지, 일반 대중의 세계는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삶에 안정적이고 물질적 기여를 할 때에만 채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의 세계는 거친 정쟁(政爭)의 세계이며 끊임없는 허위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세계였다. 이 때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부르주아 세계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 의식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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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Dejeuner sur L'Herbe
Edouard Manet, 1863
Oil on canvas
214 x 269 cm (84 1/4 x 106 1/4")
Musee d'Orsay, Paris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네의 의도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에 있었다. 그에게는 가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쿠르베의 그것이면서 인상주의자들의 그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불경스럽고 지저분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왜냐면 비도덕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가치로는 수용하기 힘든 주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은 도덕적 이념이나 가치를 재현해야 된다는, 그래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일어나야만 할 일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떤 이념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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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fifre (The Fifer)
Edouard Manet, 1866
Oil on canvas, 160 x 98 cm (63 x 38 5/8 in); Mus? d'Orsay, Paris


이러한 마네의 태도는 위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상주의적인 평면화의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원근법으로 대표되던 르네상스 이후의 환영주의이나 눈속임(Trompe de l'oeil) 경향이 뚜렷하게 후퇴하고 색채로만 이루어진 평면적인 양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일본 판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배경 사이에는 검은 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특히 신발의 처리는 매우 독특하다. 이는 실제 모습을 재현했다기 보다는 회화적 특징을 위해 새롭게 그려진 것으로, 이제 현실의 재현을 희생하고 회화적 효과에만 치중하는 방향 전환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회화는 원근법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평면화이며 탈가치화이고 반원근법주의이다. 드디어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그대로 실현하기 시작한다.

예술 의욕과 기술

인상주의는 기존의 모든 예술 양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예술을 이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의 추상과 기하학주의가 바로 이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현대 미술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언제나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사진과 인상주의의 관계는, 흔히들 사진과 경쟁하기 위해, 또는 사진을 극복하기 위해 인상주의 양식이 등장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술 의욕(kunstwollen)와 기술(technique)과의 관계이다. 예술에 있어 어떤 기술이나 기법은 예술 의욕에 의해 채용되는 것이지, 새로운 기술이나 기법의 등장이 예술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사회 전반적인 어떤 변화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예술 의욕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기법이나 기술이 채택되는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진과 인상주의는 동일한 예술 의욕을 가진다. 둘 다 모든 사물을 풍경화시키는 양식이며 도시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환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래서 현대로 올수록 이러한 환영주의를 극복하려는 사진가들의 노력이 집중되는데, 후자는 그 시작부터 환영주의를 극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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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Claud Monet, 1873
Oil on canvas, 48 x 63 cm (19 x 24 3/8"); Musee Marmottan, Paris

모네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의 기본 가정은 '자연은 변화한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은 '변화의 한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며 전적으로 자신의 감각 지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캔버스로 옮길 뿐이다. 이렇게 인상주의는 시작한다.


인상주의: 반원근법주의

존재의 세계에서 생성의 세계로, 원근법주의에서 반원근법주의로, 일원론에서 다원론으로, 중심화에서 탈중심화로, 탈가치화로, 그리하여 감각지각에만 의존한 어떤 평면주의로. 인상주의가 예술의 세계에 끼친 영향은 그 이전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른 방향의 제시였고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이었고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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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athedrale de Rouen, le portail, temps gris (Rouen Cathedral, the West Portal, Dull Weather) dated 1894, painted 1892 ; Oil on canvas, 100 x 65 cm (39 3/8 x 25 5/8 in); Musee d'Orsay, Paris


인상주의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가 바로 모네이다. 모네는 일련의 연작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루앵 대성당 시리즈도 그러한 연작물들 중의 하나이다. 색들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을 뚜렷하게 보려면 약간 거리를 두면 해결된다. 그러니깐 멀어질수록 대상은 뚜렷해지고 명확해진다. 시지각에 충실한 작품들이 보이는 경향이다. 하지만 작품은 평면화되어 있고 캔버스의 중앙이나 가장자리나 똑 같은 색들의 연속처럼 보인다.

연속되어 흘러가는 색채는 르누와르에게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그래서 인물마저도, 뚜렷하고 확고한 이념을 주장하던 양식에서 풍경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풍경화가 호소력이 있게 다가온 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누군가의 내면 세계를 알 수는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꿈꾸는지,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군가를 재현할 수는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이 때 모든 인물들은 풍경 속에 파묻혀 하나의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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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errace
Renoir, 1881
Oil on canvas
39 1/2 x 31 7/8" (100.5 x 81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인물이 하나의 풍경이 된 상황은 결과적으로 20세기의 예술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인간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이어진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제 풍경화가 예술 장르에서 뚜렷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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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nce Examination,
Edgar Degas,
pastel, Denver Art Museum.

드가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도 운동에 매혹된 화가이다. 그래서 그가 발레를 대상을 그렸을 때에는 움직이는 대상을 움직이지 않는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고전주의적 요구에 충실하였다. 이런 이유로 드가를 인상주의 예술가들 중에서도 '데생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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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e de Paris, temps de pluie; Intersection de la Rue de Turin et de la Rue de Moscou
Gustav Gailleboote, 1877; Paris: A Rainy Day depicts an area of the Batignolles quarter.
Oil on canvas, 212.2 x 276.2 cm (83 1/2 x 108 3/4");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art of the Charles H and Mary F.s. Worcester Fund

인상주의는 현대 도시의 양식이다. 도시 문명이 가져다 준 여러 문화를 그대로 옮기는 양식인 셈이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이 동조하였고 이러한 이념을 전파시켰다. 카보유트의 작품은 도시의 한 모습을 그대로 옮긴다. 하지만 모든 인물은 풍경이 되었고 보들레르가 말한 바 있는 '산책자(Flaneur)'나 '현대성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또 다른 예술의 절반은 바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예술가에게는 현대성이 있었으며, 이전 시대에도 유지되었던 아름다운 그림의 대부분을 보면 거기에 서술된 것은 바로 그 시대적 의상을 입고 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바로 인상주의 예술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세잔의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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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Les Lauves
1904-06 ; Oil on canvas, 66 x 81.5 cm (26 x 32 1/8 in); Private collection, Switzerland; Venturi no. 802


인상주의 초기부터 세잔은 참여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킨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들의 규칙이었고 기하학이었다. 그는 인상주의에 충실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을 찾아낸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생 빅투와르 산 연작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감각 지각에 의해 인식되는 것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어떤 확신을 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양식은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기하학주의로 흐른다. 이러한 그의 방향은 20세기 초의 현대 미술을 결정짓는다. 추상미술은 세잔 이후에 본격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세잔의 작업은 현실 속에서, 삶 속에서 어떤 확신을 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 인상주의자들이 인물을 풍경 속에 가두었을 땐 인간에 대한 혐오가 밑에 깔려있는 것이라면, 세잔이 자연 풍경 속에서 기하학을 발견해내는 것은 적대적 세계라는 신석기 시대에 나타난 바 있는 기하학주의의 반복인 셈이다. 그리하여 신석기 시대 이후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기하학과 추상의 세계가 20세기 예술을 물들이는 것이다.



Comment +3

  • 세잔에 대해 잘 보았습니다.
    입체파의 그림처럼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입체일테니까...
    더 사실적인 것일텐데 낯설군요..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말이 성립하는지도 의심스럽네요)

    • 세잔의 고전적 화풍은 이전의 고전적 화풍과는 본질적으로 틀립니다. '내면의 고전주의'라고 할까요. 우리 마음 속의 고전주의적 기반(기하학적인 원천)을 찾아갑니다. 이는 20세기 초반의 고전적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실험된 것이기도 합니다. 의식의 흐름이라든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나 피카소의 입체파나 칸딘스키같은 추상표현주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나타납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입체'라는 단어보다 '기하학적'라는 단어가 세잔에게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네요. 세잔의 문제의식은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기하학적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았으니깐요. 삼각형, 사각형 같은.

  • (잘 읽었습니다. 구체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가슴에는 와 닫네요.
    세잔느의 경지라고 할까요.기학학적 표현말이에요. 그것을 이해 못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입체가 기하학적 요소에 포함되기 때문에 입체라는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기하학적 요소에서 사각형은 넣고 원기둥과 같은 입체를 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세잔느를 큐비즘, 입체파로 분류하는 것도 보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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